■ 송우영의 고전산책 / 외삼촌이 조카를 혹독하게 공부시켰다는데...
■ 송우영의 고전산책 / 외삼촌이 조카를 혹독하게 공부시켰다는데...
  • 송우영
  • 승인 2021.03.11 11:02
  • 호수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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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무숙茂叔이고 아호雅號를 염계濂溪로 하는 주돈이周敦頤(1017-1073)8세가 되된 해 1025년 봄에 아버지를 잃어 생계가 어려워지자 호구지책으로 어머니의 오라버니 곧 외삼촌인 정향鄭向의 집에 얹혀살게 되었다.

외삼촌 정향鄭向이라는 사람은 지독한 공부꾼이라 조카인 주돈이는 자신이 의사와는 상관없이 감당하기 어려운 공부를 하게 된다. 정향鄭向은 어려서 종학의 가풍 탓에 공맹광자孔孟狂者로 맹자를 통해 공자에 이른다는 추로통학鄒魯通<이본에 로씀>의 학맥을 세우고자 했던 인물로 공자와 맹자만이 인성의 심지가 된다며 공부했던 것이다. 여기에 난데없이 생각지도 못한 여동생의 남편의 느닷없는 죽음으로 여동생의 아들인 8세된 조카가 들어와 살게 된 것이다.

여동생이 청상과부가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나 자식이 아버지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어찌 흔한 일이겠는가 이는 필시 하늘이 그 조카로 하여금 큰 인물 되게 하려고 그의 아버지를 데려가 그의 삶을 꼬이고 힘들게 해서 시련과 훈련과 연단을 시켜서 훌륭한 인물로 만들고자 함일 것이라고 말도 안되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 외삼촌 정향이다. 이런 생각의 이면에는 그가 평생 공부해온 맹자의 인고론忍苦論이 한 몫 했다. 원문은 맹자고장구하孟子告子章句下15문장의 기록은 이렇다.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어떤 사람에게 내리려 할 때에<천장강대임어사인야天將降大任於斯人也>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필선노기심지必先勞其心志> 뼈마디가 꺾어지는 고난을 당하게 하며<고기근골苦其筋骨>, 그 몸과 살을 굶주리게 하고<아기체부餓其體膚> 그 생활을 궁핍에 빠뜨리며<궁핍기신행窮乏其身行>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하나니<불란기소위拂亂其所爲> 이는<시고是故> 그의 마음을 흔들어 인성을 견디게 하여<동심인성動心忍性>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도 할 수 있게 하려 함이다.<증익기소불능增益其所不能>”

외삼촌의 이런 극성에 주돈이는 새벽 낮밤을 가리지 않고 눈만 뜨면 공부를 달고 살았다. 책을 손에서 놓지않는 정도의 수불석권手不釋卷을 훨씬 넘는 거질초액巨帙焦掖<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책이 검게 손때가 묻은채로 겨드랑이에 끼고 다니면서 수시로 읽고 또 읽는 공부법>의 공부였던 셈이다.

순군좌처형荀君坐處馨이라는 말이 있다. 상촌 신흠의 말인데 순욱이 앉은 자리에는 글향이난다는 말이다. 조선 선비들은 말을 할 때 앞선 현자의 말을 끌어와 읊조리는 것을 겸양언예謙讓言禮로 삼는데 곧 상촌 신흠의 이 말에는 전거典據가 있다는 말이다.

안량과 문추 목을 베기 전에 관우는 수진본<옷 소매에 넣고 다닐 정도의 작은 책>으로 필사한 춘추를 품에 넣고 다니며 읽었는데 이를 본 조조의 참모 순욱이 관우를 칭찬하면서 말하길 관공은 부가절사負檟折師 라는 말을 한다. 회초리를 짊어지고 가서 무릎 굽힌 자세로 배워야 할 스승이라는 엄청난 칭찬의 말이다.

이에 관우가 웃으면서 덕담을 하기를 순공좌향불삼산荀公坐香不三散이라 했다 곧 순욱荀彧이 앉은 자리에는 글의 향기가 삼일이 지났음에도 흩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세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말이 또 있을까. 인간의 입으로 할 수 있는 칭찬 중에서 최고의 백미로 꼽히는 이 말은 공부를 얼마나 많이 했으면 글의 향기가 몸에 배어서 장장 삼일씩이나 지났음에도 아직도 향기가 남아 있더란 말인가.

삼국지 시대에는 눈만 뜨면 죽고 죽이는 싸움의 시대인데 그 이면에서는 인격 도야의 수양을 기르기 위하여 치열하게 공부했다는 말이다. 아무튼 염계 주돈이는 외삼촌으로 인해서 어마어마한 공부를 했고 급기야 북송 인종1(022-1063) 경우景祐 3년 되는 1035년 그의 나이 19세 때 나라에서는 그가 공부를 많이 했다는 소문 하나만을 들어 무시험 특채로 홍주洪州 분녕현分寧縣의 주부主簿로 발령을 내렸고 이듬해 1036년에는 복건성福建省 남안南安의 사법관司法官 으로 부임한다. 그의 나이 불과 20세다. 그리고 얼마 후 염계 주돈이가 현자라는 소문을 들은 정향程珦<주돈이 외삼촌과는 한자이름이 다름>이라는 사람이 두 아들을 데리고 와 가르침 받게 하는데 흔히 이정자二程子로 불리는 정호程顥와 정이程頤 형제가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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