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마감
■ 모시장터 / 마감
  • 최용혁 칼럼위원
  • 승인 2021.03.18 16:28
  • 호수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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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혁 칼럼위원
최용혁 칼럼위원

자기 한 몸 건사하는 것도 늘 허덕대면서 글이랍시고 이렇게 떡하니 공적인 지면에 올릴 수 있는 이유는 오직 마감과 입금이라는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 뉴스서천의 어마어마한 원고료 때문에 글이 써진다는 사실은 비참하다. 여기서는 입금 대신 적절한 보상이라고 표현하겠다) 그렇다. 마감과 적절한 보상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낸다.

우선, 적절한 보상이 없다고 가정해 보자. 그래도 이 글을 쓰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대개는 친절하다가도 때가 되면 최용혁씨! 점심때까지 원고 보내줘야 돼!”하는 허정균 편집국장의 정떨어지는 말투를 듣고는 내가 왜 이 사람 말을 들어야 하는데?’ 하며 울분을 삭이다가도, 어렵고 고단한 지역신문을 근 이십여 년 가까이 살펴 온 양반의 선하고 짠한 얼굴이 떠오르면 , 이 돈 받고는 글 못쓰겠네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적절한 보상이라는 것은 다른 형태로도 어느 정도는 대체 가능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나한테 좀 더 잘 해 주겠지!”

그런 측면에서 마감은 좀 더 본질적이다. 마감이 없다면 나는 여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또는 이 돈 받고는 글 못 쓰겠네이 돈 받고는 글 못 쓰지 않겠어요?” 사이 이 세상에 오직 나에게만 의미 있는 미묘한 늪에서 한 발자국도 헤어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몇 일 몇 시가 마감이라는 사실은 이전과 이후를 단칼에 나눈다. 화요일 오후를 지나서 왜 내 글을 안 받아주냐고?” 큰 소리 치다가는 신뢰하고 담 쌓은 인간!”, “원래 실력도 없었지”, “파렴치한 놈! 그런 놈도 밥 먹나?”, “그 인간, 마누라하고 애들만 불쌍해하는 말을 들어도 싼, 마감 이후. , “몇 글자 고쳐도 되요?”라는 말은 부디 가슴 깊이 꾹 눌러 두길 바란다. 운명은 이미 윤전기를 돌고 돌아 칠천만 동포 앞에 발가벗은 채로 나오기 일보직전인데, 몇 글자 고치다니! 죽은 자식 부랄 만지고 싶은 심정이야 십분 이해하지만, 대체 어쩌란 말인가!

마감을 지나서 설치거나 마감을 지키지 못해서 생기는 괴로움은 이 지면 정도로도 충분하다. 한 시대를 마감지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생존을 담보로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는데, 구태가 여전히 의연한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가? 아직도 끗발나던 금광시절 요릿집이야기로 정치와 경제, 사회면을 뒤덮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가? 스스로 마감 짓지 못하는 것들은 얼마나 더 뒤틀린 세상을 만들어 낼 것인가? 자식의 자식들에게는 누가누가 더 큰 웃음거리일 것인가?

마감을 앞둔 허정균 편집국장을 노자 도덕경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로 묘사하고 있다.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알아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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