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곰솔나무가 서있던 서천읍 신송리가 고향인 조기조 시인은 1980년대 말부터 오랫동안 노동자문학운동에 참여해온 노동자 출신 시인이다.
1994년 제1회 <실천문학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는 1997년 첫 시집 <낡은 기계>(1997)를 냈다. 두 번째 시집 <기름미인>에서도 유리된 노동자의 삶을 해체하고 새로운 삶의 모습을 재구성해내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그가 최근 세 번째 시집 <기술자가 등장하는 시간>(2월 24일 도서출판b)을 펴냈다. 4부로 구성된 시집에는 모두 60여 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1부에 실린 시들의 제목에 모두 ‘기술’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그가 노동자가 되고 기술을 배운 내력을 다음 시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그 기술자가 없다면 일상생활은 어찌 될까. 우리는 매일 ‘기술자가 등장하는 시간’을 맞으며 살아가고 있다.
해결할 수 없는 곤란에 부딪힐 때
당신은 기술자를 찾는다
행복하든 불행하든 상관없이
가장 곤란할 때 기술자는 등장한다
평생을 풀과 싸워온 그의 어머니가 보기에 풀은 최고의 기술자이다.
어머니는 안식으로 풀을 기른다
풀을 기르며 풀에 대하여
이런 이야기 하나를 들려준다
내가 이기지 못한 것은 저 풀밖에 없다
1980년대 박영근, 박노해, 김해화, 백무산의 뒤를 이어 1990년대 노동자 시인으로 자리매김한 그는 그들의 문학적 성과를 이어내면서도 오늘날의 노동시인들과도 구분되는 차이를 두렷이 드러낸다. ‘작가의 말’에서 그는 “처음 시를 짓기 시작할 무렵 기계, 기름, 기술이라는 세 가지 상징으로 삶과 노동의 세계를 그려보자는 마음을 먹었다. 기계는 세계라 할 수 있고, 기름은 그 세계가 작동하는 힘의 원천이며, 기술은 세계가 작동하는 원리가 될 수 있겠다는 발상에서였다”라며 그가 파악한 기술자의 위상을 말하고 있다.

장철문 시인은 조 시인의 시를 이렇게 평했다.
“조기조 시인의 시에는 그의 고향 동구 밖에 서 있는 곰솔의 성정이 깊다. 벌써 스무 몇해째, 그는 뿌리를 구로공단으로 옮겨와 가지가 꺾이고 밑둥을 찍히며 바람 속에 걸어왔다. 그가 쇠와 공구를 다룰 때 그 곰솔 아래 모이던 사람들이 괭이와 낫, 흙을 다루던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제 그는 자신을 새로운 시간 소에 세운다. 첫 시집이 뿌리를 기댄 저 80년대와 또 다른, 한 뼘의 햇살마저 거대 빌딩에 구획되고 잘려나가는 불모의 거리를 부유하면서, 그는 스스로 푸른 가지를 드리우는 내밀한 뿌리를 가졌다. 그가 그려내는 민달팽이의 흔적같은 아중모색이 뼈아프다.”
조기조 시인은 현재 인문교양 서적을 출판하는 출판사를 운영하며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책만드는 일이 기계만드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책도 난해했지만
기계 만드는 일과 다르지 않다
어디든 공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