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내암 정인홍 남명 조식의 제자가 되다
■ 송우영의 고전산책 / 내암 정인홍 남명 조식의 제자가 되다
  • 송우영
  • 승인 2021.04.15 07:51
  • 호수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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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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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은 진사 이치李埴와 춘천 박씨 사이에 막내로 태어난지 7개월 만에 편모 슬하에서 자란다. 낙방거자에게 글을 배운 이래 12세 때 숙부에게 논어를 읽고 20세 때 주역을 모두 외웠다 전한다. 34세에 어머니의 뜻에 따라 대과에 등과 후 43세에 종3품 성균관 사성司成에 승직되면서 훈도로 내려왔고 51세에 이르러서야 포의로 지내게 되나 이듬해 정5품 홍문관 교리로 제수되어 고사하니 급을 높여 정3품 성균관 대사성에 임명한다. 나이 52세 때 일이다.

칭병하여 사임하니 1566년 명종 21년 봄 이황의 나이 66세 때 임금이 또 부르니 이황은 위인지학爲人之學과 위기지학爲己之學의 예를 들어 늙고 노쇠하니 더 유능한 선비를 등용하라며 직첩을 거둬달라 한다. 여기서 유명한 초현부지탄招賢不至嘆이라는 오언경구가 나온다. “어진 이를 불러도 오지 않음을 탄식한다는 말이다.

위인지학爲人之學은 출세를 목적으로 하되 남에게 보이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며, 위기지학爲己之學은 사람됨됨이 교육으로 자신의 수신을 목적으로 하되 사욕私慾이 자라나는 것을 막기위해 공부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논어 헌문憲問 편에 나오는 말이다. 쉽게 말해서 퇴계 이황은 위인지학爲人之學을 탐내지 않으며 위기지학爲己之學 공부를 낙으로 삼았던 올곧은 선비였던 것이다.

그런데 위기지학爲己之學 공부를 낙으로 삼았다라는 이 부분을 문제삼고 소를 올린 인물이 있었는데 남명 조식의 문인 좌찬성 종1품 내암 정인홍이다. 1611년 광해군 332666세의 정인홍은 회퇴변척소晦退辨斥疏를 올려 회재 이언적과 퇴계 이황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이들을 문묘에서 퇴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는 일정량 전하는 말이 있다. 내암은 어려서부터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의 공부법은 아침에 시작하면 다음날 아침까지 24시간 꼬박 공부하는 무작정 공부법으로 9세에 이르러 퇴계를 찾아간다. 서당에는 대략 1주일 가량 스승과 숙식을 같이 하면서 스승이 몇권의 책을 설정해주고 모월모일모시에 시험 볼테니 준비하거라 하면 공부하러 온 예비 제자는 그 책을 시험보기 전까지 다 읽고 만반의 준비를 다한다. 그러고 나서 시험날 문예問禮라 하여 스승이 제자에게 예를 묻는다는 말인데 공자가 43세 아래인 유자 유약有若을 제자로 들일 때 실시했다. 책을 안보고 문장을 외우는 배강背講이 있고 책을 보고 읽는 임강臨講이 있으며 1주일간의 생활습관을 보는 품부稟賦가 있다.

어린 내암은 오로지 합격하겠다는 일념뿐인데 퇴계는 집지의 예조차 받지 않고 잘 설명한 뒤 돌려보냈다. 9세 아이가 이를 이해하기란 불가했으리라. 어린 내암의 생각은 밤을 세워 공부한 것이 무슨 큰 잘못이라고...’ 이 부분이 퇴계가 죽음에 이르러 제자들 앞에서 자신의 그릇됨을 고백한 이유가 이 때문이 아닐는지 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서너 달 후 제자가 묻는다. 예전에 어떤아이를 어찌하여 거두지 않으셨습니까. 이에 퇴계의 답변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 아이는 강한剛寒이다. 사람은 순리적으로 살아야 한다. 낮에 일하고 밤에 자야 한다 이것은 바꿀 수 없는 이치이다. 그는 이러한 단순한 이치를 거스렸던 것이다. 물론 모르고 했겠지. 모른 데서 오는 행동은 위태로운 법이다. 알고 했다면 나쁘지만 고칠수는 있는 거고 모르고 한 것은 알기 전까지는 고칠 수가 없기에 위태롭다는 것이다. 이것이 고쳐지지않고 큰 벼슬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는다.

이 일 후 내암은 2-3년간 공부를 더한 뒤 13세에 남명을 찾아가 그의 제자가 된다. 내암 정인홍을 두고 퇴계와 남명의 지인지감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이유가 여기서 비롯된다. 1674년 현종15520일 내암에 대해 말을 아껴왔던 종1품의 판충추부사 우암 송시열은 제자 유학 이희조에게 회퇴변척소晦退辨斥疏를 한번 읽어보라며 문장이 꽤 좋다고 말한 바 있다. 인홍이 지은 고풍정맥변은<인홍유고풍정맥변仁弘有高風正脈辨> 문장이 상당히 좋다.<기문파호其文頗好> 한번 구해서 볼만하다.<가일구견야可一求見也. 송자대전 부록 제14권 어록1 李喜朝錄> 당대 대학자 우암이 일생에 누군가를 칭찬한 적은 내암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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