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냉정한 민심은 무얼 바라나
■ 모시장터 / 냉정한 민심은 무얼 바라나
  • 정해용 칼럼위원
  • 승인 2021.04.15 07:53
  • 호수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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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용 칼럼위원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너무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바를 무시하고 마땅히 해야 하는 바’(당위론)만을 고집하는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기보다 잃기 십상이다. 어떤 상황에서나 선하게 행동할 것을 고집하는 사람이, 많은 무자비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면 그의 몰락은 불가피하다. (마키야벨리 <군주론> 1513)

최근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새로 뽑는 보궐선거에서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참패를 당했다. 1년 전 국회의원 총선 때만 해도 300개 의석 가운데 183석이나 여당에 몰아주며 압도적 지지를 보냈던 민심이다. 그런데 이제 여론은 오히려 민주당을 심판한 형국이다. 다른 곳도 아닌 서울에서조차 민주당은 3957로 대패했다. 이대로라면 1년도 남지 않은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도 민주당은 위태롭다. 지난 1년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가. 야당인 국민의 힘이 환골탈태하여 시민들의 환심을 얻기라도 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다. “민심이 변한 것인가, 민주당이 민심의 기대를 저버린 것인가

이 패배의 성격은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될 수 있겠지만, 여기에는 다분히 이상주의 실험의 실패라는 측면이 있다. 민주당의 핵심층들이 순진한 이상주의를 관철하기 위해 국민다수가 감내하기 어려운 희생을 강요하거나 부자와 빈자를 가르는 경직된 잣대로 국민의 반감을 키운 결과라는 점이다. 예컨대 부동산 정책이 그랬다. 부동산 부자들을 잡겠다고 수십 번의 대책이며 규제들을 반복해 내놓더니 급기야 중산층 태반이 등을 돌리는 빌미가 되고 말았다. 부동산이 투기수단으로 변질되어 있는 현실은 물론 정상적이지 않지만, 그것을 단시일에 바꾸겠다고 무리하게 개혁을 추진하면서 오히려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는 부작용을 양산했다. ‘이상주의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조급증의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이상적인 경제 시스템, 토지제도를 추구하는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이상적이니 이렇게 가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원칙론에 사로잡혀 경직된 정책이 거듭되면, 아무리 그 이상에 동조했던 사람들이라도 반감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것이 마키아벨리가 경고한 군주(정권)의 위태로움으로 현실화된 것이다.

정치는 일반 백성들을 어떤 이상(理想)을 향해 이끌고 나아간다는 점에서 종교나 학문과 같은 본질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들과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바로 유연성이다. 이상적인 목표를 향해 사회를 이끌어가되 현실을 인정하고 잘 달래면서 이끌어가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일보후퇴 이보전진의 기술 같은 것 말이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두더지처럼 희생을 무릅쓰고 앞으로만 밀고 나가는 전략은 명분만을 위해설사 그것이 전쟁이라 해도 지혜롭지 않다. 일반 백성들이 모두 성인이나 성자들처럼 정의와 살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의나 명분보다 밥과 이익을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훨씬 많다. ‘어떤 정의를 강요할 때 국민은 물을 것이다. ‘과연 그 정의는 절대적으로 옳은가

학자나 종교지도자는 백성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지만, 정치가는 가르치는 자가 아니다. 국민 대다수를 윤리적으로나 이성적으로 하위의 존재로 단정 지은 것이 아니라면, 이런 질문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가끔은 속도조절이라도 하는 예의나 배려가 필요했다. 무시당한 국민이 그 무시하는 정권에게 같은 방법으로 되돌려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민심이 변한 것인가, 민주당이 민심의 기대를 저버린 것인가이 패배의 원인을 여론의 변심에 돌리기 전에, 민주당은 더 이상의 오만을 버리고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고 먼저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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