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 산책 / 가난이 주는 용기와 공부
■ 송우영의 고전 산책 / 가난이 주는 용기와 공부
  • 송우영
  • 승인 2021.06.03 17:35
  • 호수 10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우영
송우영

고전古典이란 세월의 풍랑 속에서 검증에 검증을 거쳐 살아남은 책을 말한다. 고전은 구체적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답을 주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답을 찾아가게 하는 수고로움 정도이다.

그런데도 아무 대목이나 콕 찝어 읽어도 에둘러맞음이 또한 고전의 묘미라 하겠다. 예로부터 각 분야의 정상급에 올라선 인류의 공통적인 관심사는 늘 고전인데 그중에 특히 저들의 주문은 인문학적 사고를 가지라는 것이다. 왜 인류는 이구동성으로 고전을 읽고 인문학적인 사고를 가지으라 명하는걸까.

고전은 면도날처럼 예리하여 어느 특정 부위를 잘라내는 뾰족함은 없다. 그저 산기슭 어딘가에 엎디어있어 찬비 맞아도 좋을 것같은 늘 변함없는 커다란 바위와 같은 그 묵직함이 주는 울림이 산 전체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고전이란 이름의 책은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읽었다면 누군가는 나라를 세우기도 하고 누군가는 황제를 만들기도 한다.

어느 시대를 무유無遺하고 그 시대마다 필독서라는 것이있다. 송나라 때는 사서삼경이 있었고 명나라 때는 십삼경이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성리사서오경이 있었다. 송대사서삼경이라 함은 사서는 대학 · 맹자 · 논어 · 중용이고 삼경은 시경 · 서경 · 역경이며, 명대십삼경이라 함은 시경 · 서경 · 삼례<주례 · 의례 · 예기역경 · 삼전<좌전 · 공양전 · 곡량전논어 · 이아 · 효경 · 맹자이며, 조선시대 성리사서오경이라함은 논어 · 맹자 · 중용 · 대학 · 시경 · 서경 · 역경 · 예경 · 춘경이다. 이중에 성리사서오경은 조선에 태어난 선비라면 죽어서도 문상객을 통해서라도 관속에서 읽어야 하는 업보와 같은 책들이다.

이 중에 단 한 권의 책을 읽고 천하를 거머쥔 인물이 역사에 버젓이 존재한다. 거지에서 황제가 된 인물 주원장이 그다. 주원장은 15세 무렵 절간을 나와 구걸하다가 드디어 마각을 드러내다라는 고사를 낳은 여인 로마각露馬脚을 만난다. 그녀는 회서淮西 숙주宿州 신풍리新丰里사람으로 세상 사람들은 그녀를 회서 땅에 발이 큰 여자 라는 뜻의 회서대발각여인淮西大拔脚女人이라 불렀다. 이는 훗날 얘기고 당시엔 고아로 곽자홍郭子興 수양딸로 살았다.

그녀가 구걸하러 온 주원장에게 맹자 책을 주면서 댓마디 했다고 전하는데 그중 하나가 명색이 남아로 천하에 뜻을 둬야지 구걸이 어찜이뇨<준마력지재천리駿馬櫪志在千里>”라며 준 책이 맹자라 전하는데 문제는 글도 모르는 주원장이 어찌어찌해서 이 책을 모조리 읽어 냈다는 데 있다. 15세에 맹자 책을 읽고 20대를 맹자처럼 살았고 30대를 맹자처럼 주유천하하다가 원나라 말기 조씨 가문에 붙들려 사지육신 열두마디에 대못을 박히는 참사를 당하고도 살아남아 더 이상 흔들리지 않을 나이라는 불혹의 40세에 이르러 천하를 거머쥔 인물이다.

인생의 바닥에서 인간으로서 가장 존엄의 자리라는 황제위까지 오른 인물 주원장朱元璋은 역사가 주지하는 바와같이 어려서 단 한 글자도 공부를 해본 기억조차 없는 인물이다. 그저 해제지동孩提之童에 버려져서 여러 군데 절들을 떠돌면서 밥 얻어먹으면서 유년幼年과 충년沖年의 시절을 보낸게 전부다. 그의 유년 시절은 절간에서 사천왕상 들과 함께 제기차고 놀았다는 기록이 유일이다. 그것도 정사엔 없고 그저 야사에 전해질 정도다. 그만큼 한미하고 비천했다는 말이다.

이 대목에 이르면 성인 공자의 어린 시절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논어論語 자한편子罕篇기록은 이렇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말한다. 나는 어려서 천했기 때문에<오소야천吾少也賤> 비루한 일도 많이 할 줄 아는 것이다<고다능비사故多能鄙事> 세 살 때 아버지를 잃고 5세 때 시씨 외삼촌을 따라다니면서 말똥 치우는 일을 했다

그런 그가 15세 때 공부를 시작해서 19세 때 남을 가르칠 실력이 됐고 40세 후반에 중도재를 거쳐 50 초반에 대사구를 지냈고 70세에 이르러 성인의 반열인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喩矩의 경지에 올랐다. 가난이 권장할 바는 못 되지만 성인 공자나 명 태조 주원장을 기준해본다면 가난이 그리 몹쓸 것만은 또 아니란 생각도 든다. 그들에게 있어 가난은 오히려 자신을 쳐서 복종시킬 줄 아는 절차탁마였던 셈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