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천하명의 태창공 순우의
■ 송우영의 고전산책 / 천하명의 태창공 순우의
  • 송우영
  • 승인 2021.06.18 06:16
  • 호수 1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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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임치臨菑 마을에 성은 순우淳于씨이고 이름을 의라 하는 이가 있었는데 어려서부터 아픈 사람을 치료해 주는 의원이 되기로 마음먹고 공부를 하고자 했으나 집안 형편이 공부할 처지가 못 되었다. 할 수 없이 먹고살기 위해서 큰<> 창고倉庫에서 일하는 것으로 호구를 해결하고 있었다.

어찌나 성실하게 일했던지 윗사람들이 좋게 보아 조금씩 승진하여 결국에는 최고 높은 직책인 창고의 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때부터 그를 큰 창고의 우두머리라는 뜻의 태창공太倉公 혹은 창공倉公이라 불렀다.

기원전 180년 고후高后 8년에 이르러<지고후팔년至高后八年> 재물이 어느 정도 모여지자 그는 의술 공부를 하기 위해 일반 평민이 올라갈 수 있는 최대 한계선인 공승公乘 지위에 오른 당대 유의儒醫 양경陽慶을 찾아가 의술을 배우고자 했는데<득현사임치원리공승양경得見師臨菑元里公乘陽慶> 당시 양경의 나이 70여세쯤으로<경년칠십여慶年七十餘> 태창공에게 그간 공부한 것을<진거이방서盡去而方書> 다 버리게 하고는 공부를 다시 시켰다 한다.<시비야非是也.사기史記105 창공전倉公傳>

그가 시켰다는 공부는 도심道心이 인심人心을 이기는 공부라는데 병자를 고치는 의원이 도심은 없으면서 인심이 강하다면 이는 필시 사람의 일곱 가지 욕심인 칠정七情을 못벗어나 생각은 자기중심적이 될 것이고 행동은 이기적이 될 것이니 의원입네 하고 아픈 병자를 상대로 돈이나 밝히고 생리적 욕구에 함몰되어 인심人心의 정서에서 허덕이게 된다는 것이 양경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인심보다 도심道心이 강한 의원은 봉사와 나눔이라는 비경제적 가치를 추구하며 매사가 이타적이고 병자 중심적이다라는 것 또한 양경의 생각이었다. 그런 까닭에 의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인심이 아닌 도심의 공부를 하라는 것이 의술 공부하려고 찾아온 태창공에게 그간에 공부한 것을 다 버리게 한 이유인 셈이다.

양경의 가르침에는 의원이 되고자 한다면 인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있어야 한다. 곧 환자와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다.<즉여통심則與痛心> 의원이 되고자 한다면 의의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있어야 한다. 곧 도덕적 정직함을 갖는 일이다.<즉정도심則正道心> 의원이 되고자 한다면 예의 사양지심辭讓之心이 있어야 한다. 곧 병자에 대한 무한 책임이다<즉병책심則病責心> 의원이 되고자 한다면 지의 시비지심是非之心이 있어야 한다. 곧 의원으로서 공부를 멈추지않아야 의원으로서의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할 수 있는 것이다.<즉근학심則勤學心>

의원에게 있어서 스승은 병자들이다. 병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의원이란 생명을 다루는 일이다. 인격도야는 물론이려니와 수양의 덕목 또한 그 내공의 깊이가 어마어마해야 한다. 결국 양경이 가르치는 의술이란 인을 바탕에 깔고 인성이 완성된 후에 의술을 쌓으라는 말이다. 여기서 의술은 인술이라는 말이 비롯된다. 일찍이 퇴계 이황은 사람은 누구나 다 자신을 지키는 글자 하나쯤은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퇴계 이황은 공경 경자 한 글자를 평생의 좌우서로 놓고 산 인물이다.

경은 성조聲調 압운押韻을 따진다면 거성去聲 경운敬韻 측성仄聲으로 거경절居慶切에 속한다. 곧 나를 낮춰 남을 높여주는 것이 경이다. 경에 대한 동중서의 해석을 인용한다면 몸을 낮춤이 아니라<불비신不卑身> 생활의 겸양이다.<소궁야素躬也> 주지하는 바와 같이 퇴계는 대학자이다. 그런 그가 자신을 낮춘다는 것이 얼마나 자신을 쳐서 복종시켰는가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천하의 폭군 수양제 양광에게 모친 문헌왕후 독고씨가 했다는 말 중에 그가 자신의 둘째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독설에 가까운 경책을 날리는데 인에 이르지 못한 자가<부지인不至仁> 부와 지위와 명예까지 얻는다면<부위명富位名> 크게 위태롭다.<향태야向殆也> 쉽게 말해서 뭘하든 사람이 먼저 되라는 말이다. 병자의 아픔을 낫게 하는 의원으로서 병자를 긍휼히 여기는 인을 잃는다면 그런 의원은 의원으로서의 전문인이기 보다는 그냥 돈벌이 수단으로서의 기술자로 전락이리라. 이런 치열한 가르침 덕에 태창공 순우의는 명의로 천하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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