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산모롱이 길
■ 모시장터 / 산모롱이 길
  • 신웅순 칼럼위원
  • 승인 2021.09.09 08:40
  • 호수 10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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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야 신웅순
석야 신웅순

내 고향 마을에 삿갓모랭이가 있다. 산모롱이가 삿갓처럼 생겨서 삿갓모랭이라고 한 것 같다. 꼭 거쳐가야 할 초등학교 길이다. 돌아가면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곳이다. 학교를 보내는 어머니의 눈길도, 학교 가는 자식들의 뒷모습도 거기까지이다. 바둑이도 나를 따라오다 거기서 돌아갔던 곳이다.

누님이 시집 갈 때 가마타고 갔던 길이요, 어머니가 이승을 떠날 때 꽃상여 타고 갔던 길이다. 비바람도 세찬 눈보라도 돌아가면 잦아드는, 잠시 다리가 아파 쉬었다 가는,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어머니 가슴 같은 아늑한 곳이다.

반세기도 훨씬 넘었다. 나는 그 삿갓모랭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산길 옆에는 맑은 물이 졸졸졸 흘러가는 작은 도랑이 있다. 그 도랑물의 맑은 물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초등학교 때 나는 매일 그 삿갓모랭 도랑을 건넜다.

그 도랑 바로 아래 논이 있었다. 거기에는 나의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내가 쓴 동화 <엉순이의 비밀>이다.

 

엄마,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 잘 다녀오너라.”

엉순이는 너무나 좋았습니다. 오늘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박대고기를 싸주신 것입니 다. 엉순이는 점심 시간에 먹을 것을 생각하며 휘파람을 불며 깡충깡충 뛰어갔습니다.

하도 좋아하는 나머지 엉순이는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도시락이 논바닥 아래로 또르르 굴러 떨어졌습니다.

, 큰일났네?”

후다닥 논으로 들어가 도시락을 열었습니다. 논물이 골고루 스며들어 도시락은 오색 무늬로 얼룩져있었습니다.

십리 길을 걸어 장에 가서 그 비싼 박대를 사오신 아빠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 리고 아침 일찍 밥솥에 찌어 손으로 일일이 찢어주신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맛있게 먹을 내 모습을 상상하며 싸주셨을 텐데. 정말 어쩌면 좋지?”

엉순이는 울고 싶었습니다.

점심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보리밥에 장아찌라도 맛있게 먹었지만 엉순이는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엉순이는 퇴비장에 가서 몰래 버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는 깨끗하게 도시락을 씻었습니다.

어머니는 깨끗하게 비운 도시락을 보며 참 맛있게 먹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 다.

이런 상상을 하니 엉순이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몇 십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엉순이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엉순이는 바닷가에 갔습니 다. 그 옛날 어머니 생각이 나 거기서 박대 고기 한 두름을 샀습니다.

어머니, 박대 고기 잡수세요. , 맛있어요.”

, 참 맛있구나.”

어릴 때의 굶었던 엉순이의 애절한 사연도 모르신 채 엉순이 어머니는 맛있게 잡수 셨습니다. 엉순이는 피식 웃었습니다. 엉순이 어머니는 그것이 무슨 웃음인지 모르셨을 것입니다. 아직도 엉순이는 이 아픈 비밀을 어머니께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도시락을 빠뜨린 곳이 바로 그 논바닥이었다.

이제는 한 번 돌아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삿갓모랭이가 되었다. 그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날 것 같다.

고향이란 무엇인가. 한시도 내 가슴에서 떠나지 않으니 말이다. 내 고향엔 송곳 하나 꽂을 땅 한 평도 없다.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지만 그 산모롱길에 작은 시비 하나라도 세우고 싶다.

아니다. 세우지 마라. 한 평생 서서 힘들게 살았으니 누운 시비라도 그냥 놓아두고 싶다. 지나는 이 없어도 도랑물이랑바람이랑 읽어 볼 수 있도록, 눈이랑비랑 적시며 갈 수 있도록 말이다.
 

나머지를 적시다 홀연 떠난 그 봄비

지금 먼 철길 어느 역을 지나고 있을까

내 사랑 산모롱길도

에돌아가는 초승달

- 아내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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