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리길 학교 걸어다니며 달리기 연습”
“시오리길 학교 걸어다니며 달리기 연습”
  • 허정균 기자
  • 승인 2021.10.15 08:40
  • 호수 10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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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100m 11.0 대기록 세운 고만길씨
▲육상선수 시절 이야기를 하는 고만길씨
▲육상선수 시절 이야기를 하는 고만길씨

 

19569월 대전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제37회 충남체육대회에서 육상 100m에서 대회신기록을 수립했으나 충남역사 80년사의 기록에서 누락된 서천 출신의 고만길 선수의 이야기가 뉴스서천 929일자에 실리자 당사자인 고만길씨가 뉴스서천을 찾아왔다.

그동안 맺힌 한이 풀렸다. 내가 신기록을 세웠노라고 주변 사람들한테 말을 하면 누가 선뜻 믿으려 하지 않았어요.”
한국전쟁 직후 그가 세운 100m 110의 기록은 대단한 기록이다. 이 해 고만길 선수는 제36회 전국체육대회에 충남 대표로 출전하게 된다. 그는 준결승에서 1위를 차지하고 결승에 진출했다. 그러나 준결승전에서 석연치않은 부상을 입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결승에 임해 8위를 기록했다 한다.
그는 당시 기산면 이사리 북리에서 태어나 기산초등학교 이사분교에 다니다 4학년 때부터 기산초등학교 본교를 다녔다. 학교까지 시오리길을 걸어 다녔다 한다. 길산천 둑방을 따라 달리며 서천중학교도 걸어서 통학했다 한다.

기산초등학교 4학년이었는데 선생님이 너 달리기 잘하니까 장항에서 열리는 시합에 한번 나가봐라 해서 나갔는데 그때 2등을 했어요

기산초등학교 시절 달리기에 소질이 있다고 정평이 나있어 오토바이 타고 장항으로 시합 나갔다고 말했다. 기산초를 졸업하고 서천중학교를 다녔는데 각종 체육대회에서 1등을 도맡아 차지했다고 한다.

작은아버지 한 분이 계셨는데 당시 공주사대를 다녔어요. 공주사범학교를 권해서 시험을 봤는데 합격을 했어요

공주에서 하숙을 하게 됐는데 선배 한 분이 달리기 잘하는 걸 알고 지대가 높은 데서 하숙집을 구하라 권했다 한다.

그래서 높은 데다 방을 얻었는데 매일 올라다니느라 저절로 다리 힘이 생기게 됐어요. 늘 배가 고팠는데 집에서 어머니가 여러 가지 양념거리를 싸주면 하숙집 아줌마한테 가져다 주었어요. 그러면 아줌마가 다른 학생들 몰래 먹을 것을 많이 챙겨주었어요
연습만 많이 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평소 살고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서천이 원래 육상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냈다며 그 덕분에 지금도 높이뛰기에서 대선수가 서천에 있는 거라고 말했다.

전국체육대회에서 좌절을 맛본 그는 지금의 경희대학교 전신인 신흥대학교에 입학했다.
그 때 면접을 하는데 체육대학장이 나왔어요. 우리학교는 재정이 넉넉지 못해 개인종목에 코치를 둘 형편이 못되니 운동을 계속하려면 다른 학교로 가든가, 아니면 이 학교에서 교직과목을 이수하면 중고등학교 교사가 될 수 있으니 둘 중에서 선택을 하라고 했어요
가정형편이 어려운 그는 운동을 포기하고 교직과목을 이수해 교사 자격증을 받았다. 그는 이후 대전, 천안, 대천에서 교직생활을 하다 최종 서천중학교 발령을 받아 서천중학교 교감으로 재직하다 퇴직했다.

육상으로 다져진 몸은 지금도 자세가 전혀 흐트러지지 않는 꼿꼿함을 보여주었다. 매주 목요일이면 봄의마을 평생학습센터에서 여는 플루트 강습을 위해 읍내 출입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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