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너는 공부마치고 나가면 뭘 할 것인가
■ 송우영의 고전산책 / 너는 공부마치고 나가면 뭘 할 것인가
  • 송우영
  • 승인 2021.10.22 06:15
  • 호수 1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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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호적에 편입 기록된 백성이라면(범편호지민凡編戶之民) 상대의 부가 나보다 열 배가 많으면 그 사람 앞에서는 나를 비하하게 되며(부상십즉비하지富相什則卑下之) 상대의 부가 나보다 백 배가 많으면 나는 그 사람을 두려워 할 것이며(백즉외탄지伯則畏憚之), 상대의 부가 나보다 천 배가 많으면 나는 기꺼이 그 사람의 일을 해주려고 애쓸 것이며(천즉역千則役), 상대의 부가 나보다 만 배가 많으면 나는 기꺼이 그 사람의 종이 되려고 발버둥 칠 것이니(만즉복萬則僕) 이것이 세상 사물의 이치다.(물지리야物之理也)”

이 말은 사마천 사기 화식열전에 나오는 말로 돈이 많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갈파한 글이다. 돈은 염라대왕도 불러다가 똥기저귀를 빨게 할 수 있다는 사마천식 돈의 속성이다. 일찍이 관자는 <관자> 치국편에서 필선부민必先富民이라 했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무엇보다 먼저 백성을 부유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삼국지 조조曹操 치국 휘하 헌제獻帝 때 상서랑尙書郞을 지낸 중장통仲長統의 말을 인용한다면 평천하의 길은 크게 세 개로 압축되는데 나라 다스림으로 평천하할 것이냐(치국평천하지도治國平天下之道) 억만금의 돈으로 무관의 제왕이 될 것이냐.(화식평천하지도貨殖平天下之道) 글로서 천하를 유치喩治할 것이냐(문장평천하지도文章平天下之道)이다. 여기서 유치喩治라는 말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치喩治라는 말을 인용해 우언寓言으로 된 산문집을 낸 인물이 있으니 원말명초元末明初 사람 유기劉基가 쓴 욱리자郁離子가 그것이다. 유기는 유치喩治는 말 다스림을 통해 치유해나간다는 말로 풀었다.

각설하고. 중장통仲長統이란 인물은 오로지 공부만으로 천하를 들었다 놨다 한 인물이다. 일찍이 조조 휘하의 1급 참모 순욱荀彧은 중장통이 공부 많이 했다는 소문을 듣고 무릎걸음으로 찾아가서 모셔온? 인물이다. 순욱 같은 당대 기재가 뭐가 아쉬워서 이런 인간에게 이리도 저자세로 상전 모시듯 한단 말인가. 이유는 단 하나다. 중장통이 공부 많이 한 탓이다.

공자는 15세를 배움에 뜻을 둘 나이라는 지우학志于學이라 했다지만 중장통은 15세 때 유우서喩于書라 하여 글에 깨우침을 가질 나이라 했다. 그는 15세 때 글에 대하여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100명의 스승에게 공부하리라. 그리하여 학통을 세우리라는 거대한, 그러나 치기어린 다짐과 함께 천하를 돌며 재야의 방외지사에게 공부한 인물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100명의 스승에게까지는 못됐고 4명째 스승을 만나 공부하던 차에 조조의 상서령 순욱에게 천거된 인물이다.

순욱도 공부에 대해서라면 누구에게도 지지않는 거의 치료를 요하는 정신병같은 벽?을 갖고있는 인물이다. 하루는 관우가 춘추책을 전장 중에도 읽는다는 소문을 듣고는 뭐라고? 칼쓰는 무장이 춘추 책을 읽더란 말이냐라며 충격에 온몸을 떨면서 춘추 책을 토씨까지 안빼고 모조리 외워서 웅얼거리며 다녔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같은 시대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은 땅을 밟고 사는 사람 중에 공부만큼은 나보다 많이 한 사람 있으면 곤란하다는 것이 순욱의 공부관이다. 순욱이 중장통을 중히 여긴 것은 그의 글 낙지론樂志論 때문이다. 고문 중에 진짜 보석같은 글만 모았다는 고문진보에 편재된 글이다. 본래 이 낙지론의 전거는 논어선진편278<11-25>에 공자와 네 명의 제자들이 모여 농담 비슷하게 너희들은 공부 다 끝내고 세상에 나가면 뭐 할 거냐라는 물음에서 시작된다. 세 명의 제자가 비슷한 말을 한다. 어느 나라든 재상에 임명된다면 3년만 다스리면 잘 먹고 잘 살게 할 수 있다. 그러자 한 사람만이 아무 말도 안하니까 공자가 물었다. 너는 공부마치고 나가면 뭘 할 거냐. 그가 말한다. 저는 봄날에 깨끗한 외출복 한 벌이 생긴다면 글줄이나 아는 사람들과 함께 가까운 강가에서 바람이나 쐬면서 옛사람이 지은 시 몇편 읽는 것으로 남은 생을 살고 싶습니다.

이에 공자께서 무릎을 탁치시면서 만고에 닿는 명언을 하신다 오여점야吾與點也. 내 말이 그 말이다. 더 쉽게 말해서 나도 너처럼 살고 싶다.’ 라는 말이다. 이 문장에서 대략 1900년 전 중장통의 명문 낙지론은 시작됐고 이 낙지론에서 대략 500년 전 조선 중종 때인 1523년 양녕대군의 증손인 이서李緖에게서 낙지가樂志歌가 나왔다. 중장통仲長統의 낙지론樂志論이 맹자가 말하는 인생삼락人生三樂경지까지 이르지는 못했더라도 유가儒家관계망을 잃지 않고 은일隱逸의 소요자적逍遙自適으로 영이귀詠而歸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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