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막걸리 사랑
■ 모시장터 / 막걸리 사랑
  • 권기복 칼럼위원
  • 승인 2021.10.27 18:39
  • 호수 107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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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눈을 뜨자마자 대충 채비를 마치는 대로 현관문을 나선다. 종종 아내가 벌써 가요? 아침 식사나 하고 가지.”라고 하면, “으응. 농막에 국이랑 밥 다 있어요.” 하고 건성으로 화답하고는 그대로 직행한다.

농막이 있는 곳은 남한의 금강산이라 칭하는 용봉산 바로 앞이다. 충청남도의 도청소재지인 내포시는 용봉산의 동쪽에 위치하고, 우리 농막은 남동쪽에 있다. 농막에 도착하자마자 담배부터 한 대 피운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는 그 어떤 곳에서나 흡연하여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까운 이웃집이 50m 이상 떨어진 이곳에서는 마음 가는 대로 할 수 있어서 좋다.

새벽 가출에 흡연의 자유를 만끽하는 즐거움도 큰 이유이지만, 더 큰 연유는 아침부터 즐길 수 있는 막걸리와의 만남이다. 온종일 노닥거릴 곳에 자동차도 주차해 놓았으니 음주를 염려할 일이 아니다. 눈 뜨자마자 술을 찾으면 알콜 중독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적당히 새벽 일을 하였으니 막걸리를 마실만 한 핑계거리는 마련한 셈이다. 점심 때에도 밖에서 약속이 없으면 여지없이 막걸리 한 병이 비워진다.

막걸리와 각별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해 봄부터였다. 내 고향 서천, 부모님 산소와 작은 밭 한 뙈기를 살피기 위해 찾아가던 길이었다. 가게에서 음료수와 빵을 구입하는 중에 종천생막걸리가 눈에 띄었다. 그래서 막걸리 3병을 추가하였다. 혼자 다 마시려는 것은 아니었다. 혹시라도 지나가는 지인이 있으면 접대할 요량도 더해진 것이다. 그러나 그날 지나치는 이 하나 없었는데, 오전이 다 가기 전에 비워졌다. 해 질 무렵, 홍성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새로 산 막걸리 5병이 차에 실려 있었다.

술을 즐기는 편이지만, 그동안 맥주와 막걸리는 자주 마시지 않았다. 맥주를 서너 잔 넘게 마시면, 다음날 자주 배탈이 났다. 막걸리는 그다지 당기지 않았으며, 음주 후에 특유한 냄새가 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홍성에서 생산되는 막걸리들은 입맛에 맞지 않았다. ‘공주밤막걸리는 달콤하지만, 서너 번 마시게 되자 단맛에 질리게 되었다. 여타 지역의 이름깨나 알려진 막걸리들도 내 입맛에 신통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부터는 서천을 다녀올 일이 있으면 열댓 병 넘게 사 오는 일이 예사였다. 서천에 사는 누이동생이 가끔가다가 막걸리 한 박스(20)를 가져오기도 하고, 안양에 사는 누이동생이 서천에 다녀오는 길에 한 박스를 선물하곤 한다. 그래서 농막에 있는 냉장고 절반은 막걸리가 차지하고 있다. 어쩌다가 냉장고에 막걸리가 잘 안 보이면, 풀기 잃은 모시 적삼 꼴이 된다.

나는 흔들지 않은 맑은 술을 유리잔에 마시기를 좋아한다. 그 빛깔은 백포도주보다 더 맑고 은은하다. 막걸리 특유의 냄새도 느끼지 못할 정도이며, 트림하는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지금까지는 함께 잔을 기울인 지인들도 그 맛을 칭찬하기에 인색함이 없었다.

내 고향, 서천에 종천생막걸리가 있어서 참 좋다. 내로라하는 서천의 특산품들이 한두 가지랴마는 요즘 나의 사랑은 막걸리에 꽂혀있다. 그 맛, 그 빛깔 그대로 고향의 향기를 간직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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