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공부하는 후학은 ‘경외의 대상’이다
■ 송우영의 고전산책 / 공부하는 후학은 ‘경외의 대상’이다
  • 송우영
  • 승인 2021.12.09 09:17
  • 호수 1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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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헌문14-46문장은 논란의 중심이 되곤한다. 읽는 이의 시각에 따라서 친구한테 저렇게 심하게 말해도 되나? 아니면 친구니까 이렇게 말한 것인가? 이도저도 아니면 원양의 그릇이 워낙에 커서 무슨 짓을 해도 다 들어줄 것 같은 그런 인물인가?

암튼 이 문장은 문제의 문장임에 분명하다. 원문은 이렇다.

원양이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은 채로 공자를 맞으니<원양사이原壤夷俟> 공자는 말한다.<자왈子曰> 어려서는 공손하지도 우애도 없으면서<유이불손제幼而不孫弟> 커서는 칭찬할 만한 일도 없으면서<장이무술언長而無述焉> 늙어서는 죽지도 않으니<노이불사老而不死> 이것을 도적이라 한다<시위적是爲賊> 하시고는 지팡이로 <원양의>정강이를 툭툭치셨다.<이장고기경以杖叩其脛>”

옛사람도 이글에 대하여 공자의 말씀이 조금은 지나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진 듯하다. 사정士正 민진강閔鎭綱의 물음이 그것이다. 이에 스승 우암은 압객狎客이기 때문에 그럴 수있다고 답한다. 압객의 고전적 의미는 서로 예를 차리지 않아도 되는 깊은 관계를 말한다. 그러면서 예로든 전거典據인 예기禮記 단궁檀弓편에 따르면 원양의 모친이 돌아가셨을 때 공자께서 치상治喪을 도왔다는 기사가 그것이다. 당시 풍습에 의하면 치상을 도울 자는 아들에 준하는 벗이라 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원양과 공자의 사이는 굳이 예를 다 지키지않아도 되는 관계라는 것이다.

명심보감19 문장 교우편交友篇은 벗에 대해 공자의 말을 빌어 이렇게 기록한다. “선한 사람과 거한다는 것은<여선인거與善人居> 향기로운 지초와 난초가 있는 방안에 들어가는 것과 같나니<여입지란지실如入芝蘭之室> 오래도록 그 향기를 느끼지 못한 듯 하지만<구이부문기향久而不聞其香> 곧 더불어 그 향기에 동화된다<즉여지화의卽與之化矣>” 원문은 공자가어인데 공자가어는 삼국지 조조시대 이후 천하통일한 사마의의 아들인 사마소의 장인 왕숙이 쓴 책으로 원작자는 공자의 11세손 공안국이고 22세손 공맹이 집에 보관되어오던 것을 입수해 주를 가하고 보망補網을 해서 찬으로 첨언하고 해를 붙이고 전을 달아 완성한 책이다.

기록은 이렇다. “공자는 말한다<공자왈孔子曰> 내가 죽은 뒤에<오사지후吾死之後> 자하는 날마다 더해갈 것이요<즉상야일익則商也日益> 자공은 날마다 덜해갈 것이다.<사야일손賜也日損>” 이 말을 듣고는 증자가 물었다.<증자왈曾子曰> 것은 무엇을 두고 이르시는 말씀입니까?<하위야何謂也>” 공자는 말한다.<자왈子曰> “자하는 저보다 나은 사람과 놀기를 좋아하고<상야호여현기자처商也好與賢己者處> 자공은 저보다 못한 사람과 놀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사야호열불약기자賜也好說不若己者> 그 아들을 알지 못하겠거든<부지기자不知其子> 그 아버지를 보면 되고<시기부視其父>, 그 사람됨을 알지 못하겠거든<부지기인不知其人> 그 벗을 보면 되고<시기우視其友>, 그 군주를 알지 못하겠거든<부지기군不知其君> 그가 부리는 신하를 보면 되고<시기소사視其所使>, 그 땅을 알지 못하겠거든<부지기지不知其地> 그 땅에 자라고 있는 풀과 나무를 보면 된다<시기초목視其草木>”

<공자가어孔子家語권사卷四육본六本제십오第十五> 윗글에 나오는 인물이 자하. 자공인데 흔히 자로까지 합쳐서 공문삼자로 자하. 자공. 자로를 일러 공자의 불세출의 제자라 하는데 그야말로 공부로 경지까지 이른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자하는 공자가 쓴 춘추책을 후학들에게 가르쳐 춘추 제1 해설서인 춘추공양전과 춘추제2해설서인 춘추곡량전을 있게 한 인물이고 자공은 돈을 어마어마하게 벌어들여 공자께서 일생을 돈 걱정안하고 살도록 배려한 인물이며 또 오늘날 인류에 논어라는 책을 있게 한 장본인이다. ‘자로는 무식하고 성질만 괄괄하다라고 인식됐지만 맹자에 기록된 자로는 다르다. 맹자孟子공손추장구상公孫丑章句上편 기록은 이렇다. “혹자가 증자의 아들 증서에게 묻는다.<혹문호증서왈或問乎曾西曰> 당신과 자로를 비교하면 누가 더 어짊니까?<오자여자로숙현吾子與子路孰賢>” 증서가 황망히 어찌할 바를 모르며 말한다.<증서축연왈曾西蹴然曰> “그분은 제 아버지께서도 경외하셨던 분입니다.<오선자지소외야吾先子之所畏也> 사서四書 어디에도 자로子路를 평가한 문장은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여기서 기억할 글자 한 자는 로 경외한다는 의미로 볼 때 논어에는 외가 한번 나오는데 논어 자한9-22문장 후생가외後生可畏가 그것이다. 공부하는 후학은 경외의 대상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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