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빙하가 물러난 이후 1만 년 동안 온화하던 홀로세가 아니라 인류세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인류가 현재 딛고 있는 지층이 파국을 앞두었다는 뜻이란다. 현 지층 다음에 인류는 없다고 지질학자들은 확신한다. 한국의 산업화를 연구한 호주 사회학자 클라이브 해밀턴의 지적처럼, 징후가 점점 뚜렷해졌어도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기 거부하는 인류”가 인류세를 자초한 셈이다. 생태학자는 현존 포유류에서 그 증거를 찾는다. 모든 포유류에서 사람의 무게가 30%를 점하고 67%는 가축, 고래에서 들쥐를 망라한 나머지 포유류는 고작 3%에 불과하다는 게 아닌가. 매우 불안정한 생태학적 역피라미드다.
수억 년 동안 무수한 생물이 바다와 육지에서 생을 이어가면서 다채로운 생태계를 형성하는 지구에 인류는 가장 늦게 동참했다. 공전과 자전하는 지구 표면의 모든 강은 1년에 한 차례 범람하고 한 번 바싹 마른다. 계절에 따르는 무역풍은 태풍과 파도 에너지를 해안에 꾸준히 전달했고 덕분에 인류도 생태계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생태계의 역피라미드 먹이사슬은 결국 붕괴한다. 안정된 생태계에서 먹는 생물은 먹히는 생물의 10%를 넘지 않는데, 무슨 연유로 여태 붕괴하지 않을까? 순환 시간이 긴 생태계 변화는 사람 시각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6500만 년 전, 지름 10km의 운석이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지각을 강타했을 때, 당시 생태계를 구성하던 생물종의 70%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불과 1만 년 사이라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이른바 ‘제5 대멸종’이다.
인류는 1만 년 전부터 농사를 지으며 생태계를 조금씩 교란하기 시작하더니 불과 100여 년 전 화석연료와 콘크리트를 사용하면서 생태계를 본격적으로 질식시킨다. 우주 형성 과정에서 완성된 금속의 핵을 파괴하며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에너지를 토해내게 만드는 인류는 생물 진화의 핵심인 세포핵의 유전자를 조작해 생태계 순환과 진화를 멋대로 교란한다. 1만 년 전 서서히 사라지던 생물이 요즘 급속하게 자취를 감추는 이유는 무엇인가? 6500만 년 전과 비교할 수 없게 사라지는 생물은 생태계를 수수깡처럼 허약하게 만들었다. 생태계 역피라미드는 무언가 받쳐주지 않으면 당장 무너진다. 인류가 무지막지하게 동원하는 에너지로 붕괴를 모면하지만, 언제까지 버틸까?
제5 대멸종은 4차례의 대멸종이 먼저 있었다는 걸 의미한다. 생존하던 생물종의 60% 이상 사라지게 만든 대멸종의 주요 원인은 기후변화였다. 산업화를 이끈 화석연료 덕분에 건물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고 자동차는 거리를 뒤덮는다. 끝모르는 에너지 과소비로 휘황찬란한 축제를 광란으로 이어가지만, 화석연료는 고갈이 머지않았다. 핵연료가 대신할 수 있을까? 파괴되는 핵은 생태계가 감당할 수 없는 폐기물을 수백만 년 남긴다. 기후위기로 다양성을 잃은 생태계는 유전자가 조작된 생물로 메울 수 없다. 방사능이 누적되는 생태계는 한순간 파국을 만날 수 있다. 1만 년 전 자신의 생태계를 스스로 교란한 인류도 안전할 수 없다.
코로나19 변이와 전파에 풍선효과가 있는 걸까? 백신 불균형 탓에 남부 아프리카에서 변이된 ‘오미크론’이 걷잡을 수 없게 번져나간다. 긴급 연구해 부자나라부터 보급할 백신과 치료제는 오미크론 변이를 진정시킬지 알 수 없는데, 인류가 일으킨 기후변화는 코로나19 팬데믹에서 경고를 마무리할 리 없다. 문제는 인류의 의료 혁신도 화석연료 없이 상상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파국을 늦추려면 온실가스를 코앞에서 내뿜는 내연기관 해결이 급하지만, 자동차와 화력발전소만이 대상일 수 없다. 비행기와 우주선도 마찬가지인데, 갯벌에 거대한 비행장을 만든 우리는 새만금과 가덕도 비행장을 서두르면서 나로호 성공을 염원한다. 요소수 대란이 극복되었으니 안심해도 좋을까? 파국 부르는 대란이 한둘 아닌데, 뚜렷해지는 인류세 증상은 어떤 파국을 예고하나? 번영보다 생존이 절박한 상황에서 2022년이 밝았다. 선거를 앞둔 새해 벽두, 우리는 어떤 내일을 선택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