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금강하구 우여떼를 기다리며
사설 / 금강하구 우여떼를 기다리며
  • 뉴스서천
  • 승인 2022.01.21 11:54
  • 호수 1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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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 되면 화양면의 망월리, 옥포리, 와초리, 완포리, 죽산리, 하산면의 용산리, 신성리의 포구들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현재의 논은 대부분 우여가 알을 낳는 갈바탕이었다. 갈대는 금강하구에서 1차 생산자이다. 산란을 위해 우여가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 인근 주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우여 포획에 나섰다.

조선조 영조 때 이중환은 <택리지>에 이렇게 쓰고 있다.

부여·은진에서 비로소 바다 조수와 통하여 백마강 이하 진강(鎭江) 일대는 모두 배편이 통한다. 은진·강경은 충청도와 전라도의 육지와 바다 사이에 위치하여서 금강 남쪽 들 가운데에 하나의 큰 도회로 되었다. 바닷가 사람과 산골 사람이 모두 여기에서 물건을 내어 교역한다. 매양 봄·여름 동안 생선을 잡고 해초를 뜯을 때에는 비린내가 마을에 넘치고 큰 배와 작은 배가 밤낮으로 두 갈래진 항구에 담처럼 벌여있다. 한 달에 여섯 번씩 열리는 큰 장에는 먼 곳과 가까운 곳의 화물이 모여 쌓인다.”

꽁댕이배라고 불리는 작은 무동력선을 이용해 조류를 따라 강을 오르내리며 포획을 하기도 했지만 배가 없어도 싸리나무나 대나무를 사용해 V자형으로 엮은 간단한 정치망인 개막이를 이용해 우여를 포획했다. 조류가 밀려오는 방향으로 입구를 벌려 놓고 썰물 때면 걸려든 우여를 거둬왔다.

우여는 이를 담는 그릇인 우께를 장착한 지게에 얹혀 내륙으로 운송되었다. 주로 배를 이용해 강경장으로 냈지만 갓잡은 우여를 지게에 지고 수십리 길을 걸어 한산장, 마산장(신장), 판교장, 부여 홍산장에 내다 팔았다. 그곳 사람들이 와서 우여를 떼어가 팔기도 했다. 이처럼 우여는 금강하구에서 쌀 못지않은 식량이었으며 금강 하류지역에 동일한 문화권을 형성시켰다.

1991년 금강하굿둑은 우여를 비롯한 수산자원을 말살시켰다. 이에 의지해 살던 많은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도회지로 향했다.

지난 11일 충청권과 전북권의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금강하구자연성회복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금강하구의 생태 기능을 되찾아 후손에게 물려주자는 데 목적이 있다. 이들은 13일 청와대를 방문하고 중앙정가 금강하구의 자연성을 회복하는 데 나설 것을 요구했다 한다.

이들의 요구에 귀를 열어야 한다. 금강 하류지역에 우여가 돌아와 산란을 하는 날 충청과 전북이 상생하고 사람과 자연이 공생하는 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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