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섬돌에 새벽 이슬 내릴 때까지
■ 송우영의 고전산책 / 섬돌에 새벽 이슬 내릴 때까지
  • 송우영
  • 승인 2022.03.04 03:23
  • 호수 1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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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영
송우영

주자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명성에 비해 그리 현달하지는 못했다. 그런 아들을 역자교지易子敎之라 하여 벗 여조겸呂祖謙에게 부탁한다. 벗은 주자의 아들들을 공부시키는데 공부를 어찌도 무지막지하게 시켰던지 마당 섬돌에 새벽 이슬 내릴 때까지<정계신로강庭階晨露降>, 긴밤 저 달이 이즈러질 때까지<장야만월휴長夜滿月虧>, 혀가 갈라지고 입술이 터지고 붓잡은 손가락에 피가 나고... 그럼에도 아들들은 워낙 아둔했던 탓인지는 몰라도 가르침과 노력에 비해 학자로서는 그만그만했다.

아버지 주자는 그런 아들들에게 학자의 미련을 버리고 지방 이서吏胥로 제 식솔들이나 건사토록 했을 뿐이다. 이를 경책 삼아 자식을 공부시킨 이가 수옹睡翁 송갑조宋甲祚 옹이고 그의 아들 우암尤菴을 가르친 이는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이다.

수옹睡翁은 문신임에 크게 현달한 인물은 아니다. 그럼에도 자녀교육만큼은 불세출의 인물로 길러낸 것임에는 분명하다. 사계沙溪 또한 벼슬로서는 크게 현달한 인물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아들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을 대학자로 길러낸 으리으리한 인물이다. 수옹睡翁이나 사계沙溪가 그들의 아들을 가르치면서 사용한 첫 교재가 율곡 이이께서 42세 되던 해인 선조 101577년에 해주 석담에 계실 때 쓰셨다는 <격몽요결>이다.

23세 때 별시 장원으로 벼슬에 올라 장장 20여 년의 환로宦路에 계시면서도 율곡 이이가 추구한 바는 위정척사衛正斥邪. 성리학의 바름으로 삿됨을 물리친다는 말이다. 그런 기조 위에 초학자를 위한 공부의 방향을 제시해준 책이 격몽요결擊蒙要訣이다.

내용은 제1장 입지立志 장에서부터 혁구습革舊習지신持身독서讀書사친事親상제喪制제례祭禮거가居家접인接人처세處世에 이르기까지 모두 제10장으로 구성된, 사서四書<논어맹자중용대학>로 입문하기 이전의 초학서인데 훗날 1788년에 이르러 정조는 이 책을 친히 열람하시고는 서문을 지어 장장 세 번씩이나 정승의 반열에 오른 이병모에게 명하여 책머리에 붙이게 했다고도 한다.

이병모는 공부가 밀려서 밀린 공부를 모두 마치느라 많이 늦은 나이인 32세 때인 1773년 영조49년에 늦깎이 진사가 되고 같은 해 문과에 등과해 관직에 나선 인물이다. 그야말로 차라리 밥을 굶고 말일이지 어찌 공부를 빼먹을 수 있더란 말이냐라며 공부라면 밥 먹는 것을 잊을망정 발분망식發憤忘食했다는 인물이다.

발분망식은 논어에 나오는 말인데 섭땅의 군주 섭공葉公이 자로에게 스승 공자는 어떤 분이시냐고 묻는 데서 시작된다. 섭공은 공부가 깊지 못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는 제 주제도 모른 체 천하를 거머쥐고자 하는 야망은 있었다. 배움은 짧으면서 야망이 클 때는 백성들이 고달프다. 왜냐면 어찌저찌 해서 그런 높은 자리에까지는 올랐지만 문제는 백성을 다스릴 역량. 곧 머릿속에 듣게 없으니 그게 문제인 것이다.

일찍이 왕희지王羲之비인부전非人不傳이라 했다. 그릇이 아니면 전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렇듯 글을 가르침에 있어서도 그릇이 아닌 자에게는 그 이상은 가르지 않는 법이거늘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랴. 그러하기에 공부를 해본 사람이라면 안다. 자신의 무지의 한계가 드러나는 지위까지는 오르는 것이 얼마나 위태로운 짓이라는 것을.

그 정도 인물이 섭공인데 하루는 천하에 명망을 떨치는 공자가 지난다는 말을 듣고는 그의 수제자 자로를 먼저 불러 공자에 대한 평판 조회를 한다. 그 첫 번째 물음이 공자는 어떤 분이신가라고 물었는데 자로는 섭공의 거두절미한 물음에 답을 못하고 물러나와 스승 공자께 이런 사실을 그대로 고하니 스승 공자가 분기탱천하시면서 하신 말씀 중에 나는 공부를 했다 하면 공부가 너무 즐거워 밥 먹는 것도 잊으며<발분망식發憤忘食>, 공부가 너무 즐거워 근심 걱정도 잊으며<락이망우樂以忘憂>, 몸이 늙어가는 것도 알지 못한다<부지노지장지不知老之將至>고 왜 말하지 못했느냐<논어술이7-18>라며 제자 자로를 엄히 야단치면서 했던 말이다. 공자는 세상 천지 어느 곳에 간들 나보다 공부 많이 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는 자부심 하나로 일생을 견뎌온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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