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가뭄으로 산천초목이 목이 탔고 울진에 사상 초유의 산불이 발생했지만, 천지사방이 봄을 알린다. 봄은 본다는 의미라는데, 마른 대지에서 봄소식이 들려 마음이 벅차다. 근교에 딱새가 둥지를 치고 저어새가 멀리서 찾아왔다. 고마울 따름이다.
봄비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해갈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감지덕지, 시커멓게 타들어 간 산록이 푸릇푸릇하고 마음을 다시 잡은 농부는 쟁기를 들었으리라. 고층빌딩과 이웃한 텃밭에 몸과 마음이 건강한 도시농부들도 삽을 들었다. 4계절이 아직 명확한 나라에 사는 건, 행복이다. 봄비가 대지를 적시면 메마른 땅이 조금씩 회복되겠지.
양철 지붕이 녹을 정도로 뜨거운 산불에도 풀씨가 싹을 틔우는 건, 표토, 다시 말해 땅 가장자리의 흙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겨울가뭄이 아무리 심각해도 다채로운 식물의 씨앗들이 표토에 남아 있다면 자연은 거뜬히 회복한다. 건강한 생태계의 모습이 그렇다. 사시사철 순환하는 대자연은 생태계의 숨결이고 인간도 덕분에 숨 쉬고 밥 먹을 수 있다.
바다도 마찬가지다. 바다 바닥의 생태계가 살아 있어야 해양생태계의 순환이 자연스럽고 건강하다. 바닷물의 순환이 활발한 대륙붕, 그중 조간대 갯벌 생태계가 특히 그렇다. 육지에서 풍화된 흙이 화강암 모래와 적당한 비율로 섞여 오랜 세월 쌓이고 쌓여 형성된 갯벌은 해양생태계의 기반이다. 수많은 어패류는 갯벌에 알을 낳고 성장하는 덕분에 바닷가에 터전을 잡은 인간은 삶과 문화를 엮어올 수 있었다.
한데, 어느 순간, 풍요롭고 아름다운 해안과 바다가 엉망이 되었다. 갯벌을 매립하고 그 위에 콘크리트를 뒤덮은 인간의 지독한 탐욕의 결과다. 비행장과 신도시, 발전소와 공업단지를 위해 갯벌을 거듭 매립한 인간은 늘어나는 수익에 눈이 멀었다. 자신과 후손의 생존 기반인 갯벌을 거의 남기지 않고 매립했건만, 모자라는지 바다의 표면, 모래를 한정 없이 긁어낸다. 콘크리트에 섞어야 초고층빌딩을 손쉽게 돋아 세울 수 있다며 앞뒤 가라지 않는다.
송도신도시의 휘황찬란한 철근콘크리트가 탐욕의 모범사례다. 해운대는 물론 화성과 영종도의 신도시도, 새만금도 신기루 같은 초호화 철근콘크리트의 꿈에 사로잡혔다.
참다못한 환경단체가 성명서를 썼다. “굴업·덕적지역 해사 채취 재추진하려는 옹진군은 각성하고, 인천시는 해당 계획 반려하라!” 바닷모래 채취로 급변하는 해저지형은 회복 불가능하고 모래 속 생물이 감소하면 해양생태계 파괴는 불가피하다고 소리쳤다. 바다에 생존을 기대는 주민이 파탄하므로 일부 자본의 이익을 위해 미래를 내다 파는 행정행위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는데, “환경특별시”를 자처하는 인천시는 묵묵부답이다. 바닷모래 추가 채취를 통제하겠다는 2019년 약속을 어긴 인천시와 옹진군은 기후위기를 부채질한다.
최근 6차 보고서를 채택한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204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지 못하면 이번 세기에 90cm 이상의 해수면 상승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곧 등장할 정부는 엉뚱하게 전기요금 상승과 GNP 하락을 걱정하며 탄소중립에 명백히 역행할 계획을 내놓는다. 절박하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해수면이 90cm의 배 이상 상승할 거라 IPCC가 경고했건만, 미래세대의 생존을 노골적으로 위협한다.
화사해지는 봄에 마음이 울적해진다. 뉴스를 피한다고 기후위기가 완화될 리 없는데, 자신의 생존 기반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입시와 취업에 목을 매는 젊은이에게 미안하게 짝이 없다. 봄이 왔건만 봄을 느끼지 못한다. 내일을 살아갈 세대의 건강과 행복을 보장해주지 못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