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의 우리말 여행(2) / 계집편성(계집偏性)
■ 박일환의 우리말 여행(2) / 계집편성(계집偏性)
  • 박일환 시인
  • 승인 2022.06.03 00:43
  • 호수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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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도 쓰이는 여성 비하 낱말
▲박일환 시인
▲박일환 시인

사내가 그깟 일로 왜 계집애처럼 굴어?”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걸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그럴 때 계집애처럼이라는 말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여자들 입장에서는 듣기 거북한, 아니 화가 나는 표현이지만 말을 던지는 사람은 그런 걸 의식하지 못한다. 사내는 대범해야 하고 계집은 옹졸하기 마련이라는 오래된 인식의 습성을 21세기에 들어서도 여전히 버리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국어사전 안에서 그런 인식의 표상이 될 만한 낱말을 만났다.

계집편성(--偏性): 여자가 가지고 있는 한쪽으로 치우친 성질을 낮잡아 이르는 말.

사내편성이나 남자편성 같은 낱말도 있을까? 당연히 없다. 사내는 그런 존재가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되기 때문일 터이다. 계집편성이라는 낱말이 국어사전에 오른 건 과거에 그런 인식이 사회에 널리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에 나온 창선감의록(彰善感義錄)이라는 고전소설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그렇지만 군자께서는 일찍이 하늘을 원망하거나 사람을 탓하는 빛을 드러낸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비록 편성(偏性) 여자라고는 하나 탄복하며 본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고전소설의 시대를 건너 신소설의 시대로 오면 어떻게 될까? 다음은 이인직의 신소설 귀의 성(-)에 나오는 대목이다.

계집이라는 것은 편성(偏性)이라, 옳고 그르고 너무 억제하게 되면 저 잘못하는 것은 모르고 야속한 생각만 날 터이요.”

이번에는 현대소설로 넘어와 보자. 표준국어대사전은 계집편성을 풀이하며 아래 낱말을 예문으로 제시했다.

내가 어젯밤 역정 난 김에 다소 무안을 줬다 해서 그게 그렇게 서럽던감? 계집편성이라지만 소갈머리가 그렇게 옹졸하면 못써.

그러면서 출처를 김주영의 장편소설 천둥소리라고 밝혔다. 이 작품은 해방 직후부터 한국전쟁에 이르는 시기를 다루고 있다. 이때까지도 아직 봉건의 잔재가 남아 있던 시기이므로 당대 사람들이 저런 말을 사용했을 수는 있다. 그런데 김주영 소설가는 계집편성이라는 말을 유난히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 야정(野丁)에도 서너 차례에 걸쳐 같은 표현이 나온다. 아무리 역사소설이라 해도 심하다 싶은 마음이 든다.

요즘 아재문학이라는 말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처녀의 봉긋한 가슴처럼 솟은 산봉우리와 같은 식으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문장을 쓰는 남성들의 문학을 이르는 말이다. 계집이 여성을 비하하는 말이라면, 이제는 아재가 감수성이 부족하고 빈곤한 상상력을 지닌 사내들을 비하하는 말로 등극한 셈이다. 시대에 뒤처진 아재들이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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