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의 낱말여행 (7) / 측면결혼(側面結婚)
■ 박일환의 낱말여행 (7) / 측면결혼(側面結婚)
  • 박일환 시인
  • 승인 2022.07.14 09:35
  • 호수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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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성(性)은 국가나 민족의 종속물이 아니다
박일환 시인
박일환 시인

결혼은 꼭 해야 하는 걸까? 이런 의문을 던지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는 건 새삼스러운 얘기도 아니다. 남들이 다 한다고 해서 꼭 그런 관습을 따라야 하는 건 아닐 테니 남이 뭐라 할 수 없는 일이긴 하나, 그로 인한 출산율 저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건 정책 당국자들이 고민할 문제겠지만,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가 갖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들도 많다는 점은 짚을 필요가 있겠다. 일찍이 프랑스의 철학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계약결혼이라는 걸 했거니와,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동성(同性) 간의 결혼에 대한 논란이 나오고 있다. 영속하는 제도는 없는 법이니 결혼제도 역시 언젠가는 지금과 다른 형태로 변화될 가능성도 있다.

국어사전을 보다 이상한 결혼 형태를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측면결혼(側面結婚): <역사> 제일 차 세계 대전 당시에, 독일에서 시행한 결혼 정책. 인구 증가의 비상수단으로 남편이 출정 중인 부인을 남편의 승낙을 얻어 일시로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가지게 하던 일.

저런 일이 있었다 해도 그런 상황을 결혼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어딘지 어색한 낱말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결혼보다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개념에 어울리는 내용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누가 저런 용어를 가져다 붙였을까? 아무래도 일본에서 건너온 말인 것 같아 찾아보았더니 일본의 은어를 모아놓은 사전에 나온다. 거기서는 측면결혼을 남편이 본처의 동의를 얻어 다른 여자나 정부(情婦) 혹은 첩을 들이는 것을 뜻한다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대체로 본처와의 사이에서 아이가 없는 경우에 행해진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 외에 독일과 관련한 내용은 보이지 않았다.

독일에서 제일 차 세계 대전 당시에 행했다는 일종의 대리출산에 대한 기록은 역사책에도 잘 나오지 않는다. 폭넓게 행해져서 심각한 반발을 불러일으킨 정책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런 걸 일본 사람들이 쓰는 용어까지 가져와서 우리 국어사전에 실을 필요가 있었을까? 그보다는 제이 차 세계 대전 때 설치한 레벤스보른(Lebensborn)이 많이 알려진 편이다.

나치 집단이 아리아인의 순수 혈통에 집착하면서 유대인 등 타민족을 박해하고 학살한 사건은 인류 역사가 길이 기억해야 할 부끄러운 장면이다. 레벤스보른은 1936년에 하인리히 힘러가 설치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생명의 샘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처음에는 나치 친위대원들이 순수 아리아인을 많이 낳도록 하기 위한 곳이었으나 나중에는 노르웨이에도 여러 곳에 설치하여 나치 대원과 노르웨이 여성 간의 성관계를 장려했다. 노르웨이 사람들이 아리아인의 특성을 많이 지니고 있다고 해서 실시한 정책이다. 기록에 따르면 노르웨이의 레벤스보른에서 태어난 아이가 8,000, 레벤스보른 밖에서 태어난 아이가 4,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에 독일군 아이를 낳은 노르웨이 여성들은 자국민들에게 온갖 비난과 핍박에 시달려야 했으며, 심지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기도 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 역시 정상적인 성장 과정을 거치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여성의 임신과 출산은 어떤 이유로도 강제할 수 없으며, 여성의 성()은 국가나 민족의 종속물이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의 역사는 그런 당연한 사실을 무시하며 여성의 몸을 단순히 출산 도구로만 여겨 오기도 했음을 확인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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