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자식은 엄마가 허락한 만큼 큰다母子許長
■ 송우영의 고전산책 / 자식은 엄마가 허락한 만큼 큰다母子許長
  • 송우영
  • 승인 2022.09.08 10:49
  • 호수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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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영/서천서당 훈장
송우영/서천서당 훈장

공자의 공부는 기본적으로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는 수신지학修身之學이다. 공자의 수신지학修身之學을 꿰뚫어본 인물이 맹자 모친 장씨부인이다. 그녀는 위공자魏公子 장계仉啓의 여식이며 남편은 맹격孟激으로 노나라 환공桓公의 후예이며 그의 아들 맹자는 주나라 열왕烈王442일에 태어났다.

난지 3년만에 아버지 맹격孟激이 죽고 이에 모친 장씨부인은 아들 맹자에게 공부하는 것으로 삶의 명운을 건다. 당시의 공부는 공자의 제자들을 통해 천하로 나아갔으며 학통은 공자孔子-증자曾子-자사子思를 통한 그의 문도를 거쳐 맹자孟子에 이른다. 공자 사후 공자의 문도들이 춘추전국시대를 관통하며 전역에 퍼져 노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송나라에 두루 산재하여 공자의 예학을 가르쳤다.

송나라 사람들은 좌구명左丘明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과 남송말에서 원나라 초기의 학자 증선지曾先之가 쓴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나오는 송양지인宋襄之仁이나, 진시황제 때 재상을 지낸 이사李斯의 벗이자 그 벗에게 양쪽 다리가 잘려죽은 한비가 쓴 한비자韓非子 오두편五蠹篇에 나오는 수주대토守株待兎, 맹자 공손추장에 나오는 알묘조장揠苗助長등의 고사성어故事成語에서 보듯이 생각과 행동이 모자라는 천치의 대명사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본래 주나라 무왕武王이 은나라를 멸망시킨 후 은나라의 제사를 잇고 또 고대의 예학을 살리라는 의미로 미자微子를 송에 봉해 제사를 비롯 예학을 전수토록 했으며, 특히 공자 사후에는 공자의 마지막 제자 자하복상子夏卜相에게 춘추를 배운 공양가公羊家의 사람들이 송으로 가서 춘추를 가르쳤는데 원문에 설명<>을 했다 하여 이를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이라 한다.

이처럼 송나라는 공자께서 42-43세 때쯤에 집대성한 예기<그 전에도 다양한 예기禮記 책은 있었으나 공자께서 집대성하여 지금의 판본에 이름-논어 서설 참조>를 비롯 공자께서 70세에 이르러 손수 쓰신 춘추 책 등이 문도들에 의해 강학되던 바 특히 노나라와 송나라간의 국경지대쯤 지역에는 공자의 춘추와 송나라의 궁중 제사법과 예학의 학군을 이뤄 다른 지역이 전쟁으로 한창일 때 이 지역은 맹자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는 공부하는 지역이었다.<논어 팔일편 3-9참조>

맹자진심장구하의 가르침에 따르면 맹자의 말에<맹자왈孟子曰> 어떤 사람이 말하길<유인왈有人曰> 나는 전쟁의 진을 치는 것을 잘 알고<아선위진我善爲陳> 나는 전쟁의 싸우는 것을 잘 한다<아선위전我善爲戰>고 말한다면 그것은 큰 죄다.<대죄야大罪也> 이처럼 맹자는 근본적으로 전생을 멀리한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공자의 손자 자사의 제자를 통해 공자를 공부했던 맹자로서는 당연한 말일 수 있다.<논어 위령공15-1문장 참조> 물론 필부 맹자가 천하의 맹자로 거듭나는 데는 그의 모친 장씨부인의 힘이 컸다. 저자거리에는 인류 삼대모친이라는 말이 회자된다. 현량삼모賢良三母가 그것이다.

첫째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제갈량諸葛亮, 방통龐統과 동문수학했다는 서서徐庶가 그인데 그의 모친 서모徐母씨이다. 둘째는 송나라 악비岳飛장 군의 모친 악모岳母씨이다. 비록 배운 바는 없으나 늘 자녀에게 정직을 외쳤던 모친이다. 셋째는 맹자 모친 장씨부인이다. 청상과부로 오로지 아들 하나만을 위해 일생을 건 여인, 중국에는 양림이라는 말이 있다. 두 개 성인聖人의 무덤이라는 말인 바 공자의 무덤인 공림孔林과 맹자 모친의 무덤인 맹모림孟母林이 그것이다.

나라 산동감찰어사 종화민鍾化民이 쓴 제맹모문祭孟母文에 운자성모성야子聖母聖也라했다. ‘곧 자식이 성이면 모친도 성이다쯤 되는 말이다. 맹씨보孟氏譜에 따르면 맹자는 나면서 총명했으며<맹자생유숙질孟子生有淑質>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숙상기부夙喪其父> 어려서 인자한 어머니로부터<유피자모幼被慈母> 세 번 옮기는 교육을 받았다.<삼천지교三遷之敎> 학야부지성學也不止成이라 했다 공부는 멈추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성공한다. 좌사左思가 여동생 좌분左芬<사마염司馬炎의 처>을 가르치면서 했다는 말이다. 동한東漢 사람 원강元康은 말한다. ‘모자허장母子許長이라했다. 자식은 엄마가 허락한 만큼 큰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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