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정치는 공부의 마지막 수업
■ 송우영의 고전산책 / 정치는 공부의 마지막 수업
  • 송우영
  • 승인 2022.10.07 08:57
  • 호수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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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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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사람인 자장子張은 공자께서 진채지액陳蔡之厄의 변에서 돌아올 때 따르기 시작한 인물로 공자의 마지막 제자다. 공자보다 장장 48세 어린 당시 나이가 스물남짓이었다.

그는 공부에는 그닥 관심있는 인물은 아니다. 가난을 일용할 양식처럼 먹고 살았던 탓에 그의 어린 시절은 매우 불운했다. 그 돌파구로 공자를 붙든 것이다.

논어 위정편2-18문장은 이렇게 명토박아둔다.

자장이 벼슬을 얻는 공부를 물으니<자장학간록子張學干祿> 공자님 말씀에<자왈子曰> 많이 듣고 모르는 건 빼고<다문궐의多聞闕疑> 나머지는 말을 삼가면<신언기여愼言其餘> 허물이 적을 것이고<즉과우則寡尤>, 많이 보되 모르는건 빼고<다견궐태多見闕殆> 나머지는 행동을 삼가면<신행기여愼行其餘> 후회가 적을 것이고<즉과회則寡悔>, 말에 허물이 적고<언과우言寡尤> 행동에 후회가 적고<행과해行寡悔> 그 정도라면 벼슬은 저절로 생긴다<녹재기중의祿在其中矣>”

자장은 외모가 빼어난 인물로 선진11-17 문장에서 공자는 전손사 자장을 일러 사야벽師也辟이라 한다. 즉 자장은 한쪽 면만 신경썼다는 말인데 주자의 집주는 이렇게 해석을 단다.

자장은 외모 곧 용모에만 신경쓰느라<위습어용지謂習於容止> 성실함이 적었다<소성실야少誠實也>”

대대례기 오제덕편에서 공자는 자장을 이렇게도 평한 바 있다. “내가 용모를 보고 사람을 취하려 했으나 자장子張을 보고 난 후로 생각이 바뀌었다.”

순자비십이자荀子非十二子는 자장을 이렇게 기록한다. “공자의 제자들 중에 관을 머리에 꾹 눌러쓰고<제타기관弟佗其冠> 말은 심오한 뭔가 있는 듯 말하며<중담기사衶禫其辭> 우임금처럼 걷고 순임금처럼 뛰나니<우행이순추禹行而舜趨> 이는 공자의 제자 자장子張으로 저렴한 선비다<시자장씨지천유야是子張氏之賤儒也>”

여타의 글들로 미루어보아 자장이란 인물은 외모에 꽤 신경썼고 공부해내는 고통보다는 높은자리 올라가서 떵떵거리는 꿈만 꾼 그런 떠벌이 류의 갑싼 인물임에 분명했다. 자장은 늘 우쭐댔으며 매사가 넘쳐날 정도로 자존감만 지나친 인물이었다. 논어선진11-15문장을 그런 그를 자공의 물음을 통해 이렇게 기록한다.

자공은 묻는다.<자공문子貢問> <자장子張:자장의 본명 전손사顓孫師>와 자하는 누가 더 현자입니까?<사여상야숙현師與商也孰賢>”

자공의 묻고자 하는 질문의 속내를 훤히 알고 있는 스승 공자는 동문서답을 한다.

자왈子曰 자장 전손사는 넘친다.<사야과師也過> 자하 복상은 모자란다.<상야불급商也不及>”

그러자 자공은 자기가 아끼는 동생처럼 여기는 전손사 자장 편을 들면서 말하길 그렇다면 자장이 낫다는 말씀입니까?<왈연즉사유여曰然則師愈與>” 이에 공자께서 마뜩한 표정으로 말씀하신다. “자왈子曰 넘침이나 모자람이나 같다는 말이다.<과유불급過猶不及>”

공자보다 45세 어리고 자장보다는 3년 년배인 자유子游 언언言偃은 자장을 이렇게 평한다. “자유는 말한다.<자유왈子游曰> 내 친구 자장은 오우장야吾友張也. 어려운 일 처리하는 데는 해결사다.<위난능야爲難能也> 그러나 인하지는 못했다.<연이미인然而未仁>”

그래서 이런 자장을 안타깝게 여긴 자하복상은 자장에게 공부할 것을 주문한다.

자하왈子夏曰 날마다 배우지 못한 것이라도 기어이 알아내며,<일지기소망日知其所亡> 매월마다 이미 배운 것을 잊지 않도록 한다면<월무망기소능月無忘其所能> 가이 배움을 좋아한다고 이를 수 있다.<가위호학야이의可謂好學也已矣>”<논어자장476-19-5>

이런 일이 있은 후 자장은 공부를 했다는 기록은 없는데 스승 공자님과의 대화를 미루어볼 때 공부가 상당히 많이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곧 논어 요왈 편 20-2문장이 그 근거다. 하루는 자장이 스승 공자께 물었다.<자장문어공자왈子張問於孔子曰> “어떻게 하여야 가이 정치에 종사할 수 있겠습니까?<하여사가이종정의何如斯可以從政矣>”

처음엔 높은 벼슬 구하는 공부를 물었고 이젠 공부의 완성이랄 수 있는 치국治國를 물은 것이다. 정치는 공부의 마지막 수업이기 때문이다. 공자 사후 자장子張은 본국인 진나라로 돌아가 재상의 반열에 올랐으며 벼슬을 마치고 재야학자로 훗날 죽림칠현과 당 현종이 따른 현학의 비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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