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장터 -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방법
모시장터 -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방법
  • 칼럼위원 정해용 시인
  • 승인 2022.10.13 17:57
  • 호수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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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용 칼럼위원
정해용 칼럼위원

마크 트웨인을 읽는 중이다. 역시 글은 사람들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만필체(漫筆体)가 적당하다. 피곤해 보이는 글이나 불편한 진실을 고발하는 글 따위는 사람들이 읽으려고 하지 않으니까. 읽히지 않는 글을 쓰는 건 시간낭비요 자원낭비다.

미국 내에서 마크 트웨인은 ‘미국 문학의 아버지’로 불릴 만큼 중요한 작가다. 하지만 세계적으로는 ‘톰 소여의 모험’ 같은 동화를 쓴 작가로 아주 잘 알려져 있으면서도 그 밖의 일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사실 그는 뛰어난 유머작가인 동시에 당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문명비평가이자 풍자문학가였다.

TV드라마도 영화도 없던 19세기에 미국인들은 마크 트웨인의 글이 실린 신문 잡지를 구독하며 그의 만필이 이끄는 대로 함께 웃고 울었다. 1998년부터 존 F. 케네디공연예술센터가 매년 미국 내 최고의 코미디언을 선정해 수여하는 유머 상에는 ‘마크트웨인상’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생애 후반기에는 사회비평가로서도 활발했다. 흑인노예해방운동에도 앞장섰고 미국의 대외침략(당시 필리핀을 식민지로 삼으려던 외교정책)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자였다. 만년에는 미국의 제국주의화를 반대하는 연맹(Anti-Imperialist League)에도 참가했다. 동급의 부회장단 16명 중에는 당시 저명인사, 유력인사들이 많다. 존 듀이(교육사상가) 펠릭스 아들러(정치사회학자) 칼 슐츠(정치인) 그로버 클리브랜드(전직 대통령) 앤드류 카네기(철강왕)을 비롯하여 몇 명의 주지사급 상원의원급 정치인들과 스탠포드대 총장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들과 나란히 마크 트웨인은 진보적 사회운동가였던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톰 소여의 모험’ 외의 사회참여 활동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은, 그 자체로 뚜렷한 한 가지 증명이 된다. 재미로 읽을 만한 글 외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 사람들은 ‘불편한 진실’이 언급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불편한 것이면(몸에 불편하든 마음에 불편하든), 일단 피하려는 게 본능에 충실한 일이기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 역시 세상에 불편한 진실을 알리거나 깨우치는 글은 잘 읽히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았다. 때로는 그 자신에게 위협적인 결과가 돌아올 위험도 있었다. 1901년 8월 미주리주에서 공평하지 못한 폭력사건(흑인에 대한 일방적인 집단폭력사건)이 벌어졌을 때 마크 트웨인은 비분강개하여 신랄한 비판 논설을 썼는데, 출판사의 만류로 공개가 유보된 적이 있다. ‘이 글이 출판되면 아마 남부지역에서 당신의 독자가 절반은 떨어져 나갈 겁니다.’ 결국 그 원고는 사건으로부터 23년이나 지나, 다른 글들이 실린 책에 끼여 겨우 공개됐다.

때문에 마크 트웨인은 사람들이 즐겁게 읽으면서 내심으로는 부끄러움을 깨닫게 되는 고도의 유머를 구사할 방법에 대해 많은 고심을 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즐거운 것, 이익이 되는 것, 편안한 것에 관심을 갖는다. 그 반대의 것은 되도록 멀어지고 싶어 한다(甘呑苦吐). 하지만 어쩌랴, 이것은 인간이라는 종(種)에게 생물학적으로도 중요한 생존전략의 하나라는데. 19, 20세기만의 일도 아니고, 미국이나 유럽만의 일도 아니다.

그러나 분명히 명심할 것이 있다. 반드시 관심을 가져야 할 사회적 문제들조차 게을리 외면하다 보면 세상은 점점 더 부조리해지고, 사회의 암적 존재, 부끄러운 세력들이 되레 더 큰소리치고 사는 현상이 확대된다. 한번 중병이 시작된 사람이 여간해서 완치되기 어렵듯, 사람들이 외면하고 침묵할수록 사회나 국가는 더욱 병이 깊어질 뿐이다. 스스로를 위해서는 이 경계선이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적어도 사회의 병환상태에 대하여 관심의 끈을 놓거나 개선을 포기하지는 말아야 한다. 예의주시! 이것이 지금 단계에서 유지해야 할 ‘희망’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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