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공부에 대한 공자의 자부심
■ 송우영의 고전산책 / 공부에 대한 공자의 자부심
  • 송우영
  • 승인 2022.10.13 18:00
  • 호수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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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님께서 노년의 어느날 노魯나라 숙손씨叔孫氏가 서쪽으로 사냥갔다가 기린麒麟을 잡았다는 ‘서수획린西狩獲麟’의 사건을 끝으로 손수 찬하시던 춘추 책을 절필하셨는 바 춘추 책의 내용이 워낙 심묘막측한지라 강호 후학들의 논학을 거친 후 완성된 세 권의 해설서를 갖는데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이 그것이다.
이중에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 제19편第十篇 소공19년조昭公十九年篠 동冬의 기록에 아들은 어떻게 공부해야하는가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쉽게 연의演義 형식을 빌어 풀어쓴다면 이렇다.

8세 이전의 아들이<자기생子旣生> 물과 불을 만나 화를 당한다면<불면호수화不免乎水火> 이는 엄마의 잘못이며<모지죄야母之罪也>, 10-15세의 나이가 되었음에도<기관성동羈貫成童> 스승을 못 만나 공부를 못했다면<불취사전不就師傳> 이는 아버지의 잘못이며<부지죄야父之罪也>, 스승을 만났음에도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취사학문무방就師學問無方> 마음과 뜻을 잡지 못한 아들의 잘못이며<심지불통心志不通>, 마음과 뜻을 잡고 이미 공부를 많이 했음에도<심지기통心志旣通> 천하에 명성이 알려지지 않았다면<이명예불문而名譽不聞> 이는 벗의 잘못이다.<우지죄야友之罪也> 공부를 많이 하여 벗이 소문을 내어 이를 관리가 들었음에도 확인 후 천거하지 않는다면​<유사불거有司不擧> 이는 벼슬하는 관리의 잘못이며<유지죄야有司之罪也>, 관리가 이미 인재라 확인 후 천거하였음에도<유사거지​有司擧之> 임금이 그를 들어 쓰지 못했다면<왕자불용王者不用> 이는 임금의 과오다.<왕자지과야王者之過也>

아들의 인생은 남자로 성장하면서 크게 세 단계로 구분한다. 15세에 이르면 배움에 뜻을 두어야 하며<십오지우학十五志于學> 그렇게 30년을 공부한 후 45세에 이르면 출사를 하는데<사십출사四十出仕> 청운靑雲의 꿈이 꽃피는 벼슬길에 나서던가 백운白雲의 길로 접어드는 일민<逸民-학문의 덕행이 있으면서 세상에 나서지 않고 묻혀 사는 사람>의 삶을 살든가이다. 그리고 60에 이르면 ‘지이순至耳順시폐동창始蔽東窓’이라 하여 창문을 닫을 때라 여겨 살아온 인생을 반추하여 글을 짓는데 시詩‧부賦‧서書‧사辭‧간簡이 그것이다. 이것이 여의치 못하다면 필사筆寫를 하는데 그중 처음 시작이 공자님의 말씀이 기록된 논어에서이다.
그리하여 남자가 생을 다 마치면 그 사람에 대하여 단 한 가지를 묻기를 생전에 벼슬이 뭐였는가를 묻지 않으며 재물을 얼마만큼 쌓았는가를 따지지 않으며 오로지 하나의 물음만 존재하나니 책을 뭘 썼는가이다. 혹여 환경과 처지와 글이 모자라 책을 짓지 못했다 하면 논어를 필사했는가를 대체 물음으로 갖는다.
이러한 옛 선비들의 인생 공부 방식을 본받아 한때 기독교 교회 안에서 성경책 옮겨쓰기, 곧 필사 운동이 일었던 적도 있었다. 물론 본인들은 그 기원이 유가의 선비들 논어 필사에서 비롯된 줄은 아마 몰랐으리라. 남자는 보통 자신이 죽기 전까지 자신의 키만큼 글을 쓰고 죽어야 한다는 게 옛 선비들의 생각이다. 여기에 대하여 모범을 보여준 인물이 바로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 살다간 사람 공자님이시다.
서자요 측실의 자식으로 태어나 그나마도 3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16세 때 모친을 여읜 탓에 온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했던 그가 먹고 살려고 아등바등대면서도 놓지 않았던 것이 공부다. 그의 인생 역정은 크게 둘로 구분한다. 오소야천과 십실지읍이다. 논어 자한편9-6문장의 기록 오소야천吾少也賤 고다능비사故多能鄙事를 풀어쓰면 이렇다. 나는 어려서 천했다. 그래서 먹고 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러다 보니 천한 일들을 잘하게 되었다. 얼마나 뼈아픈 얘긴가 아마도 도려내고 싶은 기억이었으리라.
그리고 또 한 기록이 공야장5-28문장 자왈子曰 십실지읍十室之邑 필유충신여구자언必有忠信如丘者焉 불여구지호학야不如丘之好學也의 문장이다. 풀어쓰면 이렇다. 십 호 정도의 마을이면 그곳에 틀림없이 충성과 신의가 나만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부를 좋아하는 것은 나만큼 만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공부에 대한 하늘을 찌르는 공자님의 자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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