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오만과 편견
■ 모시장터 / 오만과 편견
  • 권기복 칼럼위원
  • 승인 2022.12.30 14:02
  • 호수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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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복 칼럼위원
권기복 칼럼위원

세밑 한파가 북반구 전역에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이웃 일본은 초유의 눈사태로 인하여 설빙 속에 갇힌 이들이 부지기수이며, 북미 지역에서는 동사(凍死)하는 사람들이 매일같이 수십 명씩 발생하고 있다. 유럽의 상황은 더욱 심하여 에너지 대란과 함께 몸도 마음도 꽁꽁 언 채 겨울나기를 하고 있다. 한해를 온전히 전쟁통에 내몰린 우크라이나 국민과 갖가지 사연으로 부유하는 난민들의 상황은 순간순간 생사를 넘나드는 지경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모든 시민이 영하의 기류 속에 시린 겨울을 보내고 있다. 특히 시민들을 더욱 한파 속으로 내모는 것은 날씨보다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이 냉각되어 있기 때문이다. 날씨야 시간이 가고 계절이 바뀌면 풀리겠지만, 인간이 빚어낸 한파는 언제 풀릴지 기약이 없다. 그러하기에 내일도 해는 떠오르고 새해가 밝아오겠지만, 새 희망을 품고 노래하기에는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지난주, JTBC 주말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16회분이 종영되었다. 미디어 홍수 시대에 시청률 25%를 달성할 만큼 그 인기는 최고 수준을 구가하였다. 매회마다 등장인물 간 빚어내는 갈등과 충돌의 연속은 시청자들을 휘어잡았고, 다음 회를 애태워 기다리게 하였다.

처음에는 금수저인 재벌가와 흙수저인 서민 간의 사회구조적인 갈등을 전개하는 듯하였으나, 주인공의 복수전으로 내달리면서 그 의미는 희석되었다. 금수저는 흙수저와 다르다는 오만에 빠진 재벌가 사람들과 흙수저를 갑질의 산물로 여기는 주인공의 편견이 매 장면마다 서로 치고받는 막장드라마에 불과하였다. 마지막 회에 복수가 아닌 참회란 대사가 나오지만, 딱히 시청자의 가슴에 와닿는 느낌이 없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을 몰입시키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음을 인정한다. 왜냐하면, 드라마 속 상황이 우리들의 현실 상황과 전혀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1813)은 엘리자베스라는 서민 여성과 디아시라는 귀족 남성이 편견과 오만을 품고 만나지만, 대화와 이해로 이를 극복하면서 사랑의 결실을 이룬다는 로맨틱 소설이다. 위 소설은 대화와 이해로 화해의 장을 이루게 되지만, ‘재벌집 막내아들은 음모와 술수로 끝장을 보이고 있다. 두 작품의 차이는 내면적인 존중과 증오의 간극에서 빚어진 것이다.

우리 인간 사이에서 갈등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처한 이해관계가 제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갈등이 심화되면 충돌이 발생할 수 있음도 물론이다. 그렇지만 서로 간에 존중하는 마음의 끈을 놓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화해의 악수를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서로 간의 증오로 이어진다면 공멸로 가는 수밖에 없다. 이 전제가 현재 우리 사회는 어떤 상황에 와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우리는 저마다 제 가슴에 손을 얹고 그 답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 정치, 사회가 얼마나 오만과 편견에 빠져 있는지 위정자나 국민 모두 되돌아봐야 한다. 원만한 경제의 흐름을 위해 강대국이나 약소국이나, 재벌가나 서민이나, 어른이나 아이나 모두 오만과 편견의 넝마를 벗어야 한다. 지구촌 한쪽이나 사회 그늘 속에 처박혀 지금도 한파에 사지가 얼어가는 사람들 가슴에 따뜻한 마음을 얹어주는 손길이 절실한 때임을 알아야 한다. 나아가 우리 모두 증오와 갈등의 굴레에서 벗어나 존중과 이해의 굴림쇠를 힘차게 굴려보자.

내일 다시 떠오르는 해가 모든 사람의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희망찬 새해가 되기를 두 손 모아 본다.

2006년부터 모시장터를 통해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지역사회의 건강성 회복을 위해 글을 써오신 권기복 칼럼위원은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붓을 내려놓으셨습니다.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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