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만에 되찾은 ‘설’ 명절
100년 만에 되찾은 ‘설’ 명절
  • 허정균 기자
  • 승인 2023.01.20 09:10
  • 호수 1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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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 일제 침략의 산물...'설 쇠지 말라' 탄압 받기도
▲1978년 설 귀성열차 예매 첫날 서울역 앞 광장을 가득 메운 인파
▲1978년 설 귀성열차 예매 첫날 서울역 앞 광장을 가득 메운 인파

태음력을 쓰던 우리 민족은 설을 최대의 명절로 삼아왔다. 그러나 1895년 을미개혁기에 도입한 양력설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공식적인 로 인정받은 반면, 음력설은 구정이라 부르며 천대받았다.

당시 양력설과 음력설을 함께 쇠는 것을 이중과세(二重過歲)’라고 해 양력설을 지내도록 장려했으나 전통을 중시하는 민간에서는 음력설이 사라지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양력설만을 인정, 11일부터 3일간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은 우리의 전통명절인 음력설을 쇠어 사실상 두 번의 설을 지냈다.

설은 음력설이 진짜라는 전통이 워낙 강했기 때문인지 1963년 박정희 군사정권의 국가재건최고회의는 구정농어민의 날국경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양력설은 그대로 두되 음력설 하루를 쉬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계가 모두 양력을 쓰는데 우리만 고리타분하게 음력을 되살려 국제화에 역행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많았다. 결국 정부는 바로 구정을 공휴일로 하는 건 시대에 맞지 않고 여러 가지 낭비가 뒤따른다며 백지화했다.

이어 음력 설을 못 쇠게 하는 압력의 강도가 높아졌다. 70년대 내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설날 근무기강을 다잡는다며 설날 중앙부서 연두순시를 하거나 기관장회의를 열게 했다. 75년 국무회의에서는 정부가 이중과세를 하지 않도록 국민을 지도 계몽하는 방침에 전혀 변화가 없다고 새삼 강조하고 공무원부터 솔선수범해 두 번 설을 쇠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촉구했다. 78년 최규하 총리는 구정 날 공무원이 정시에 출퇴근을 하는지, 근무 중 자리를 뜨지는 않는지 철저히 감시하라집안단속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 후 전두환 정권 때인 1985년 설날 명칭에 대한 다양한 논의 결과 음력 11일을 공휴일인 민속의 날로 지정했고, 마침내 19892월 설날 공휴일을 현재와 같이 변경했다. ‘설날이라는 명칭을 회복한 것이다. 당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개정령설날명칭의 복원과 설날 3일의 공휴일지정과 관련된 내용을 보여 준다.

이는 민족고유 명절인 설을 되살리고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자 하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고향을 방문하는 귀성객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199812‘IMF 이후의 경제난 타개이중과세의 낭비를 막기 위해 정부는 양력설 연휴를 하루로 축소시켰다. 당시 양력설 연휴의 축소를 두고, 생산성 향상을 이유로 1999년부터 시행하자는 경제단체와 익년도 달력을 이미 제작한 인쇄업계의 2000년부터 시행하자는 주장이 동시에 제기됐고, 논의 결과 1999년부터 양력설 연휴를 축소해 현행과 같이 자리잡게 되었다.

양력설과 음력설로 병존하던 설날은 이런 과정을 거쳐 민속 명절 본래의 위치를 되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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