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퇴하기 오래 전부터 나는 주말 부부로 대구와 서천을 오갔다. 금요일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서천으로 달려오는 길은 언제나 설렘 그 자체였다. 그것은 나에게 비밀의 정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나의 비밀의 정원인 봉선지가 있었기에 힘든 줄도 모르고 매주 세 시간을 운전해 올 수가 있었던 것이다. 봉선지는 내가 서천을 더욱 사랑하는 계기가 되었고 서천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나를 서천 홍보대사라고, 상을 받아야한다고 지인들이 나를 놀렸지만 봉선지가 주는 큰 혜택은 나를 서천 팔불출로 만들었다. 봉선지는 나에게 힐링 뿐 아니라 자연이 주는 좋은 에너지를 제공했다. 또한 원시적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태가 그대로 살아있어 관찰하는 재미도 있었다. 주말마다 봉선지를 찾으면 그동안의 피로가 사라지고 가슴이 시원해져서 심리적 안정감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던 중에 봉선지 가운데로 관찰 다리가 만들어 진다는 소식에 잔뜩 화가 나서 뉴스서천에 독자 투고를 하였었다.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방문과 공사로 행여나 봉선지의 생태계와 아름다운 경관이 훼손될까봐, 오랫동안 잘 보존되었던 자연스러움과 호젓함이 무너질까봐 염려스러워서였다. 봉선지 주변 갓길의 산책로가 이어지지 않는 것이 늘 안타까웠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생뚱맞은 다리 구조물을 만들어야만 했는지는 아직까지도 수긍하기가 힘들다. 필요한 곳에 새로운 시설물이 들어서는 거야 어쩔 수 없겠지만, 신중히 검토하고 건설했어야 할 기존의 데크를 방치하고 없애고, 새로운 데크와 다리를 만들어 놓은 것이 얼마나 더 나은 일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제 봉선지의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아름다움은 새로 놓인 다리와 더 넓고 크게 만들어진 산책로와 수중 데크로 인해 노출이 되어 버렸다. 특히 후암리 쪽의 수중 데크는 보호받아야 할 천연기념물, 멸종위기야생동물인 큰기러기, 개리, 큰고니, 황새가 먹이 활동을 하는 곳에 설치되어 있어 볼 때마다 염려스럽다. 데크를 최대한 바깥 쪽으로 만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그동안 숨어서 몰래 지켜보던 줄거움이 사라질까봐, 이들이 내쫒길까봐, 더 이상 이들이 찾아오지 않을까봐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겨 버렸다. 물버들생테체험장에서 시작되는 데크를 따라가다 보면 이미 텃새가 되어버린 민물가마우지의 서식지가 있고 물닭, 뿔논병아리가 먹이 활동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산책을 한다고 가까이 다가가면 분명 새들이 놀라 날아갈 텐데, 그렇다면 새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가림막이라도 설치했으면 좋겠다.
봉선지를 좋은 관광지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잘 유지하고 지켜나가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물버들생태체험장이 생기고, 오토캠핑장까지 들어설 때, 봉선지를 터전으로 살고 있는 텃새와 철새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수질에는 영향이 없는지 충분한 논의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자연이 인공적인 것과 결합하여 더 좋아진 예는 찾기 힘들다. 개발의 오만함에 젖어 있는 한, 자연과 생태계를 보호하기란 불가능하다. 봉선지에 깃들인 철새들과 텃새들, 그리고 자생하는 수생식물들이 사라지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봉선지의 가치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풍광, 아름다운 철새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자연은 그대로 두어야 한다.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은 원시적인 자연이 유산이고 한재산이란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나의 비밀의 정원이라 불렀던 봉선지가 개발에만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과 동식물의 터전을 잘 유지하는 관광지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심 노심초사하던 내 마음도 사족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 나는 왜 자연을 인위적으로 가공하는 이야기만 나오면 이렇게 흥분하는 것일까.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다는 아니지만, 나의 봉선지 사랑이 유별난 것일까. 달라진 봉선지를 보면서 찾는 횟수가 줄어든 것은 예전의 호젓한 봉선지를 그리워해서일 것이다. 아무쪼록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며 조화롭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봉선지에서 찾는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나의 사랑 봉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