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의 낱말여행 (37) / 증작(贈芍)
■ 박일환의 낱말여행 (37) / 증작(贈芍)
  • 박일환 시인
  • 승인 2023.03.10 09:54
  • 호수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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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에게 바치는 꽃
박일환 시인
박일환 시인

누군가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을 때 어떤 선물을 고르게 될까? 값비싼 보석이나 반지 같은 것도 있겠지만 꽃을 선물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싶다. 사랑하는 여자 앞에 무릎을 꿇고 꽃 한 송이나 아름답게 묶은 꽃다발을 내미는 장면을 드라마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때 가장 선호하는 꽃이 빨간 장미꽃인데, 그건 꽃말이 열렬한 사랑혹은 불타는 사랑이기 때문일 터다.

사랑하는 이에게 꽃을 바치는 건 동서양 공통인 듯하고,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풍습으로 내려오고 있다. 꽃은 아름다운 자태로 눈을 즐겁게도 하지만 은은히 감도는 향기가 사람을 유혹한다. 그래서 꽃을 좋아하는 이는 많아도 싫어하는 이는 드물다.

사랑의 표시로 장미 대신 건네는 꽃도 있다.

증작(贈芍): 작약(芍藥)을 선물로 바친다는 뜻으로, 남녀가 서로 사랑을 표시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다년생인 작약은 꽃이 크고 탐스러워서 함박꽃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으나 정확한 이름은 아니다. 보통 산지에서 자라지만 요즘은 정원에 관상수로 심는 경우도 많다. 작약은 생김새가 장미와 비슷하고 향기 또한 꽤 진한 편이다. 그래서 작약을 장미 대신 사랑의 선물로 바치는 걸까? 하지만 그런 생각은 막연한 추론에 그칠 뿐이어서 증작(贈芍)이라는 말과 그 뜻이 어디서 비롯했는지 따져보는 게 우선이다.

이 말은 중국의 고전시가를 모은 시경(詩經)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그중에 진유(溱洧)라는 제목의 시가 있는데, ()나라의 수도를 둘러싸고 흐르는 강물인 진수(溱水)와 유수(洧水)를 말한다. 시의 마지막 대목은 이렇다.

維士與女 伊其相謔 贈之以勺藥(유사여녀 이기상학 증지이작약)

풀이를 하자면, 선비와 여자가 서로 즐겁게 놀다 헤어지며 작약을 주었다는 뜻이다. 원문에 나오는 상학(相謔)을 서로 즐겁게 놀았다고 해석했지만 실제로는 서로 사랑을 나누었다는 내용으로 보아야 한다. 시 전체의 줄거리는 처음 보는 두 남녀가 강가를 벗어나 들판으로 가서 사랑을 나누고 헤어지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증작(贈芍)은 바로 증지이작약(贈之以勺藥)’에서 온 말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강에 봄물이 흘러넘치는 삼월이면 강가의 들판에 남녀들이 나와 짝을 지어 어울리는 풍속이 있었다. 놀이를 핑계 삼아 남녀가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었다. 후에 정현(鄭玄)이라는 학자가 해설한 바에 따르면 사랑을 나누고 헤어질 때 남자가 여자에게 정을 맺은 은혜를 생각해서 작약을 건넨 것이라고 한다. 남녀가 만나 사랑을 나누는 행위는 그 자체로 아름답거니와 작약이 있어 더 흥취를 돋게 한다.

춘정(春情)’ 혹은 봄바람이라는 말에는 서로 좋아하는 사람 간에 느끼는 감정이나 행동을 비유하는 의미가 들어 있다. 만물이 생동하는 기운을 느끼게 하는 계절에 사람의 마음이라고 고요히 가라앉아 있을 리 없다. 절로 마음이 들뜨면서 자연스레 짝을 찾아 사랑을 나누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봄이 더욱 아름다운 계절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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