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의 낱말여행 (39) / 채동지(蔡同知)
■ 박일환의 낱말여행 (39) / 채동지(蔡同知)
  • 박일환 시인
  • 승인 2023.03.31 07:49
  • 호수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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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명에서 분화해간 낱말 ‘--동지’
박일환 시인
박일환 시인

동지(同知)라는 벼슬명이 있다. 조선 시대에 중추부(中樞府)에 속해 있으면서 종이품에 해당하는 관직을 일컫던 용어였으니, 제법 높은 직책에 해당하는 셈이다. 국어사전에 동지(同知)가 들어간 낱말 몇 개가 나온다. ‘보리동지(--同知)’라고 하면, 곡식을 바치고 벼슬자리를 얻은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다. 다른 한편으론 조금 둔하고 어수룩한 사람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그래서 무던하게 생긴 시골 사람을 일러 촌보리동지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제갈동지(--同知)’라는 말도 있다. ‘제갈제가 스스로 가로되를 줄인 말로, 자기 스스로 동지라 칭한다는 뜻이다. 나이도 있고 재물도 웬만큼 있으나 지체는 낮으면서 교만하게 구는 사람, 혹은 부잣집 늙은이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이다. 보리동지나 제갈동지는 이렇듯 진짜 동지(同知)와는 관련이 없고, 꼴 보기 싫어하는 이를 경멸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비슷한 취지로 진짜 동지가 아닌 이를 비꼬아 말하는 낱말이 또 있다.

채동지(蔡同知): 말과 행동이 허무맹랑한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채동지라고 했으니 채씨 성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게 분명해 보이는데, 왜 하필 채 씨를 끌어들였을까? 특별한 까닭이 있을 거라는 짐작을 해볼 수 있다. 채동지는 실존 인물이라고 하는데, 몇몇 자료에 이 사람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가장 자세히 다루고 있는 건 인천의 향토사학자이자 언론인이었던 고일(본명 고희선, 1903~1975)이라는 사람이 쓴 인천석금(仁川昔今)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19544월부터 자신이 주필로 재직하던 <주간인천>에 인천 지역의 다양한 사회상을 연재했던 글을 모은 것으로, 1955년에 출판했다.

이 책의 내용에 따르면 채동지는 35세 무렵에 인천으로 건너와 개항장 근처를 떠돌아다녔으며, 큰 몸집에 매우 뚱뚱했다고 한다. 출신지와 정확한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사람들이 누구나 채동지라고 불렀고, 예순 너머쯤의 나이에 지금의 인천 중구 전동 부근인 웃터골 길가에서 객사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걸인처럼 살았던 채동지라는 사람이 유명해진 건 도무지 믿기 어려운 색다른 이력 때문이다. 채동지의 침이 묻은 과자를 먹으면 온갖 병이 낫는다는 소문이 퍼져 사람들이 너도나도 과자를 들고 채동지를 찾아다녔다는 것이다.

이런 채동지의 기행 아닌 기행이 널리 알려지면서 한때는 경성까지 진출하기도 했던 모양이다.(인천과 서울살이의 선후 관계도 분명치는 않다). 윤치호의 일기(1920)와 종합 잡지 개벽48(1924)에도 채동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둘 다 채동지가 기행을 벌인 곳을 경성으로 기록하고 있다. 윤치호의 일기에 따르면 채동지가 독립문 근처 서대문 밖에서 자신의 침을 바른 떡을 팔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채동지의 침을 얻기 위해 사람들이 돈이나 패물, 옷가지 따위를 들고 모여들었다고 한다.

채동지가 활약(?)했던 건 1910년대 후반에서 1920년대에 걸친 시기였던 걸로 보인다. 채동지가 작정하고 사기를 친 것일 수도 있겠으나 근대 의학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던 시기에 미신에 매달린 이들이 많았음을 보여주는 일화라고 하겠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나는 신이다>라는 제목의 시리즈를 방영했다. 기독교복음선교회(통칭 JMS)의 정명석을 비롯한 사이비 교주들이 저지른 만행을 고발한 프로그램이다. 일반인들의 눈으로는 자칭 메시아를 따르는 열혈 신도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니 채동지 같은 사람이 자신의 침을 팔아먹었다는 것도 그저 허무맹랑한 이야기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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