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인간은 '사기꾼전략'의 대가이다
■ 모시장터 / 인간은 '사기꾼전략'의 대가이다
  • 장미화 칼럼위원
  • 승인 2023.04.06 17:39
  • 호수 11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미화 칼럼위원
장미화 칼럼위원

언제부터인지 집에 달력이 사라졌다. 달력을 걸어놓아도 어느 구석에 있었거나 더 이상 보지 않게 되었다. 바쁜 일상에서 놓치면 안 될 중요한 일정은 스마트폰의 캘린더에 기록된다. 종이 달력을 넘길 때마다 그 달을 상징하는 사진과 함께 느꼈던 계절감은 사라졌다. 대신 스마트폰의 스케줄표 달을 넘길 때마다 시간의 속도감만 느껴질 뿐이다. 그렇지만 집을 나선 순간 만나는 자연이 계절을 알려주니 그나마 위안을 얻는다. 매화나무, 벚나무, 도화나무의 가지에 피어나는 꽃을 보니 그동안 입고 다니던 옷들이 너무 무겁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에서 가장 생동감 있는 계절을 꼽으라면 봄일 것이다. 꽃이 피면 향기에 취하는 건 사람이나 곤충이나 매 한 가지, 꽃이 핀 나무에 몰려든다. 벌과 나비가 꽃을 찾는 이유는 우리가 익히 아는 것처럼 식물의 짝찟기를 대행해 주고, 그 대가로 꽃은 곤충에게 꿀을 제공한다. 우리는 이러한 관계를 공생이라 한다.

계절의 달력은 곧이어 후각을 제대로 자극하는 아카시나무 꽃들의 향연이 다가올 것을 예고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카시아는 콩과의 아카시나무이고 실제 아카시아는 미모사과로 중앙아메리카에 주로 서식한다. 벌과 나비가 꽃과 동맹을 맺은 것처럼 열대나 아열대 지방의 아카시아나무도 개미와 동맹을 맺는다.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교 젠슨 교수는 쇠뿔아카시아인 코니게라(Acacia cornigera)와 개미의 한 종인 수도머맥스(Pseudomrmex)의 특이한 공생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개미는 아카시아에 접근하는 다른 곤충을 물거나 쏘는 방식으로 쫓아내 주고, 주변의 외래 식물이 아카시아의 성장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줄기나 잎을 턱으로 잘라버린다는 것이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아카시아는 그 댓가로 부어오른 듯이 커다란 가시(Swollen-thorn)에 개미가 알을 낳고 살아갈 수 있도록 방수가 잘 되는 속이 빈 공간을 만들어 내주고, 잎사귀 끝에 이슬처럼 달려 있는 Beltian body(지질과 단백질 덩어리)와 풍부한 꿀샘을 제공하여 개미들이 굶어 죽거나 다른 아카시아로 이동하지 않도록 관리한다.

가장 놀라운 발견은 1967년 린 마굴리스의 세포 공생설이다. 원래 독립적으로 활동하던 미토콘드리아가 현재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진핵세포) 속으로 들어와 세포 내 에너지 생산을 담당하는 소기관으로써 공생관계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사람과 미생물,이 관계는 또 어떠한가? 사람의 몸속 세포가 약 30조 개인데, 이보다 많은 약 39조 개의 미생물이 사람의 소화기관은 물론 면역체계와 호르몬 분비에 관여하며 함께 살고 있다. 이 밖에도 청소어와 대형물고기, 지의류라고 부르는 균류와 녹조류 결합체 등 자연계에서 공생관계를 맺고 있는 사례는 많이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공생의 길을 택했을까? 그 이유는 한정된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것보다 협력을 하는 것이 더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A Beautiful Mind)’에서 다룬 실제 모델인 수학 천재 존 내쉬(John Nash)가 개발한 게임이론이 그것을 증명해 보였다. ‘죄수의 딜레마로 더 잘 알려진 이론인데 서로 자신의 이익만을 취하는 것보다 협력하는 쪽이 서로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Gen of Selfish)’에서도 협력이 어떻게 진화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좋게 말하면 상대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이지만 어수룩해서 이용해 먹기 딱 좋은 상태로 상대가 원하는 대로 내주는 봉(Sucker)전략, 받기만 하고 보답하지 않는 사기꾼(Cheat)전략, 상대의 전략을 그대로 되돌려 주는 원한자(Grudger)전략을 폈을 때 결국 살아남는 쪽은 원한자전략을 구사하는 생물이라는 것이다.

생존을 위한 방법은 서로를 위한 협력이다. 협력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이라고 자연과 과학이 증명해 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자연을 상대로 사기꾼전략을 줄기차게 써 왔다. 사기꾼전략을 반복해서 쓴 경우 절멸한다는 게임이론이 오늘날 기후위기 앞에선 우리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 같다.

313일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열린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6차 종합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평균 온도가 1850~1900년 대비 근래 10년간(2011~2020) 1.1도 상승했다는 것이다. 이는 기후위기로 벌어질 영향들의 강도와 수준을 예고하는 수치이다. 암울한 미래를 전망하는 의견들이 점점 많아지지만, 그렇다고 어김없이 다가오는 미래를 손 놓고 맞이할 수만은 없다.

현시점을 함께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공생하는 법을 배우고 실현하는 것이다. 그 방법을 묻는다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한 곳에 붙박혀 사는 아카시아(식물)가 어떻게 지극히 동적인 개미(동물)의 세계에서 자기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었을까?”라는 문구를 인용하여 답을 대신하고자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