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냉장고와 후쿠시마 핵오염수
■ 모시장터 / 냉장고와 후쿠시마 핵오염수
  • 박병상 칼럼위원
  • 승인 2023.08.24 14:43
  • 호수 11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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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상 칼럼위원
박병상 칼럼위원

냉장고가 클수록 쓰레기가 늘어난다. 입맛이 까다로워진 걸까? 다시 오르는 음식에 손이 가지 않는다. 냉장고 이후의 호사일지 모르는데, 전에 없던 음식쓰레기라는 용어가 생겼다. 유통기간 지나면 상한 걸까? 유통기간은 판매 기한이다. 지났다고 주부 탓할 일이 아니고 대개 별 탈 없는데, 여지없이 버린다. 개도 거들떠보지 않을 음식쓰레기가 되었으니 멀쩡해도 가차 없다.

요리에 자신 없는 남자, 그중 중년의 주말부부에 불문율이 있다. 배고플 때 반찬가게를 어슬렁거리지 말라는 원칙으로, 집에 다녀오지 못한 주말의 반찬가게가 함정이다. 눈과 코를 어지럽히는 반찬을 냉장고에 일단 쟁여놓지만, 한꺼번에 버리게 된다는 거다.

낚시광 선배도 그랬다. 냉동고에 채워둔 어패류를 처리할 때마다 고문당하는 기분이었는데, 쌓이는 설거지 그릇을 보기 민망했다. 주부가 감당하기 어려운 쓰레기가 나왔는데, 사실 음식쓰레기는 가정보다 식당, 식당보다 식재료 상가에 많다. 무엇보다 식품회사에서 압도적으로 발생한다. 새벽에 배송하는 밀키트는 종이상자와 비닐 쓰레기만 늘리지 않는다. 간편한 조리를 위해 농산물과 축산물을 가공하면서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나오려나. 상상 이상일 텐데, 커다란 축사와 가공식품회사는 어떨까?

어디에 살든, 누구나 언제든 두부를 살 수 있는 세상이지만, 생협이 아니라면, 누가 어떤 콩으로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기 어렵다. 관심 있는 소비자의 예외적 노력이라면 모를까, 김 피어오르는 두부를 살 기회를 좀처럼 드물다. 편리하게 포장해 동네방네의 크고 작은 소매상에 제때 배달하는 사회에서 냉장고는 생명줄이다. 어느 단계라도 고장은 음식쓰레기를 낳는다. 어두운 광에서 시루에 물을 부으며 콩나물을 키우는 가게는 없다.

앞으로 일본 후쿠시마산 어패류는 우리 냉장고에 들어오지 못할 것인가? 후쿠시마 해산물 수입은 없을 거로 누차 강조하는 정부에 신뢰가 생기지 않는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를 거듭 예고하는데, 우리 정부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보고서를 겸허히 수용하잔다. IAEA는 핵의 평화적 사용을 목적으로 세운 국제단체다. 핵 안전을 연구하는 과학단체가 아닌데, IAEA가 안전을 주장하면 먹는 자에게 당연히 안전해야 하는가? 안전을 되뇌는 정부가 후쿠시마 어패류의 수입을 거부할 과학적 수단이 있겠는가? 일본은 보란 듯 제소할 텐데, 이길 거라 믿는가?

희석과 관계없이 후쿠시마 핵 오염수에 포함된 방사성 물질은 총량만큼 태평양 생태계를 오염시킨다. 썩지 않는 방사능은 먹이사슬을 타고 농축될 수 있는데, 태평양과 인근 바다, 갯벌, 육지를 차례로 오염시킬 것이다. 일본 정부는 무슨 의도로 핵 오염수 방류의 기술적 문제를 IAEA에 진단해달라 물었는지 우리 정부는 따지지 않았다. IAEA는 고장 잦다고 알려진 다핵종제거설비에 문제없다고 화답했을 뿐, 거듭될 방류가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언급하지 않았다. IAEA가 편집해 일본 정부에 상납한 과학을 왜 우리가 수용해야 하나?

막대한 전력을 공급하는 핵발전의 이면은 이렇듯 추악한데, 우리 정부도 그 길을 고집한다. IAEA는 핵 권력자에 모종의 탐욕적 신호를 선물했다. 핵물질에 오염된 폐수라도 핵 산업계가 만든 규정대로 방류하면 그만이라는 유사 과학이다. 냉장고를 모를 때 인류사회에 쓰레기와 성인병은 거의 없었는데, 근사하게 커지면서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한술 더 떠, 미래세대를 향해 겸허히 수용하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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