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1년 4월 1일 자 조선일보에 따르면 황해도 출신인 김형산이라는 사람이 비듬약을 개발한 데 이어 다음과 같이 빈대 퇴치약을 발명해서 전매 특허권을 신청했다고 한다.
“다시 연구를 계을니 아니하야 금번에 또다시 경향을 막론하고 큰 고통을 밧게 되는 「빈대」(南京虫) 퇴치약을 발명하였다는데 연구에만도 삼 년이란 긴 세월을 소비한 만큼….”
기사 내용 중 ‘빈대’ 옆에 괄호를 친 다음 ‘南京虫’이라는 한자어를 병기한 걸 볼 수 있다. 이 낱말이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 실려 있다.
남경충(南京蟲): <동물> 매미목 빈댓과에 속한 곤충. 몸길이는 5밀리미터 내외이고, 몸은 둥글납작하며, 몸빛은 적갈색이다. 머리는 작고 더듬이는 4마디이며, 배부는 편평하고 둥글며 크다.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다. 학명은 Cimex lectularius이다.
옛 문헌에서 빈대를 뜻하는 한자어를 찾으면 여러 개가 나오는데, 국어사전에 실린 건 노비(蠦蜰), 상슬(床蝨), 취슬(臭蝨), 취충(臭蟲) 같은 낱말들이다. 취슬과 취충에 쓰인 ‘취(臭)’는 냄새를 뜻하는 한자이므로 그렇게 이름 붙인 까닭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어려운 한자를 사용한 노비(蠦蜰)는 중국 문헌에서만 보이며, 상슬(床蝨) 역시 마찬가지다.
상슬(床蝨): <동물> 바닥에 기는 이라는 뜻으로, ‘빈대’를 달리 이르는 말.
표준국어대사전의 풀이인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상(床)이라는 한자를 바닥으로 풀이했으나 침상에 사는 벌레라고 하는 게 이치에 맞다. 영어에서 빈대를 ‘bedbug’라 부르는 것과 일맥상통하지만 우리는 사용하지 않았던 낱말이다. 우리는 예로부터 침상 대신 온돌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상슬 대신 우리 문헌에는 벽에 붙어산다고 해서 벽슬(壁蝨), 자라처럼 납작한 몸을 갖고 있다고 해서 별슬(鼈蝨) 등으로 부르기도 했으나 이 낱말들은 국어사전에 없다. 노비나 상슬 대신 이런 낱말을 표제어로 올렸어야 한다.
이제 다시 처음에 소개한 남경충이라는 낱말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남경(南京)은 중국 장쑤성(江蘇省) 서남쪽에 있는 도시로 난징을 가리키는 지명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빈대라는 곤충에 남경이라는 지명이 들어가게 된 걸까? ‘南京(なんきん)’을 일본어 사전에서 찾으면 물건 이름에 붙여서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온 것 혹은 희한하거나 작은 것을 이르는 말이라는 풀이가 달려 있다. 그러니까 외국산을 일컬을 때 ‘南京(なんきん)’을 앞에 붙이는 건 일본 사람들이 쓰던 용법이라는 얘기고, 그런 낱말들이 식민지 시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잠시 사용되다가 해방 후에 자취를 감췄다는 말이 된다.
이런 사정에도 아랑곳없이 우리 국어사전에 남경이 붙은 낱말 몇 개가 표제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땅콩을 뜻하는 남경두(南京豆)가 그렇고, 맹꽁이자물쇠를 뜻하는 아래 낱말 역시 마찬가지다.
남경정(南京錠): 서양식 자물쇠의 한 가지. 반타원형의 고리와 몸통의 두 부분으로 되어 있으며 열쇠로 열면 고리의 한쪽 다리가 몸통에서 떨어져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