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막론하고 여럿이 춤을 출 때 둥글게 원을 그리며 추는 형식으로 된 것들이 많다. 보통 원무(圓舞)라고 하는데, 간혹 윤무(輪舞)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비슷한 형식의 춤을 가리키는 낱말 하나가 국어사전에 더 실려 있다.
둘레춤: 꿀벌들이 근처에 꽃밭이 있다고 알릴 때 추는 춤.
표준국어대사전에만 있고, 한글학회에서 펴낸 우리말큰사전에도 보이지 않는 낱말이다. 꿀벌들이 추는 춤이라고 풀이했는데, 춤 동작이 나와 있지 않다. ‘둘레’라는 말이 붙었으므로 원무 형식의 춤일 것 같기는 하다. 자세히 알아보기 전에 둘레춤이라는 용어가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추는 춤을 뜻하는 용법으로는 쓰인 적이 없을까 하는 의문부터 풀어보기로 하자.
“엉기엉기 도는 그들의 둘레춤에도 일찍이 땅에선 보지 못하던 멋이 있는 것 같았다.”( 경향신문, 1958.4.29.)
“당신은 황금빛 가을 벌판에서 담바링을 두다리며 둘레춤을 추던 중앙아시아 우크라이나의 처녀”(경향신문, 1960.6.2.)
첫 번째 인용문은 정한숙의 장편소설 『처용랑』에서 무희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묘사한 구절이고, 두 번째는 설창수 시인이 발표한 산문시 「목내이(木乃伊)-그들의 dialogue」에 나오는 구절이다. 담바링은 탬버린의 일본식 발음이다. 그 외에는 둘레춤이라는 낱말이 쓰인 흔적을 찾기 어려운 것으로 보아 널리 사용되던 낱말은 아닌 게 분명하다. 한자어이긴 하지만 원무라는 낱말이 널리 통용되고 있었기에 몇몇 문필가가 끌어들인 둘레춤이라는 낱말이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둘레춤은 그렇다 치고 아래 낱말은 어떨까?
돌춤: <민속> 탈춤에서, 한 사람을 가운데 두고 여럿이 그 둘레를 둘러싸고 돌면서 추는 춤.
돌면서 추는 춤을 나타내려면 ‘돌이춤’이나 ‘돌림춤’ 같은 형태로 낱말을 만드는 게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돌춤’처럼 용언의 어간만 떼서 명사 앞에 갖다 붙이는 형태로 합성어를 만드는 조어 방식은 우리말에서 극히 드물게만 나타난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을 비롯한 전문 서적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옛 신문 기사를 모아 놓은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에도 용례가 나오지 않는 걸로 보아 민속학을 공부하던 누군가가 임의로 만들었으나 관련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한 걸 충분한 검토 없이 국어사전 안으로 끌어들인 듯하다. 그런데도 표준국어대사전뿐만 아니라 고려대한국어대사전, 한글학회가 편찬한 우리말큰사전에도 거의 동일한 문구로 된 풀이를 달고 실려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차라리 ‘둘레춤’을 가져다 쓰는 게 나았을 듯싶다.
둘레춤이라는 말은 1973년에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오스트리아의 카를 폰 프리슈가 연구해서 발표한 꿀벌의 춤 동작에서 비롯했다. 꿀이 있는 곳을 찾아 나선 선발대원 격인 꿀벌이 돌아와 동료들에게 꿀이 있는 곳을 알려주는 동작 중의 하나가 둘레춤이다. 둘레춤은 꿀이 있는 곳이 100미터 이내일 때, 8자 모양을 그리는 8자춤을 추면 100미터 이상 되는 거리를 나타낸다고 한다. 공중에서 추는 게 아니라 벌집 위에 앉아 작은 원을 그리며 돈다. 원무가 사람의 춤을 나타내는 용어로 쓰이다 보니 구분을 위해 둘레춤이라는 말로 번역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