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삐라 말고 ‘통일쌀’
■ 모시장터 / 삐라 말고 ‘통일쌀’
  • 최용혁 칼럼위원
  • 승인 2024.06.12 11:45
  • 호수 11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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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를 규탄한다
최용혁 칼럼위원
최용혁 칼럼위원

610, 서천군 농민회는 열아홉번째 통일쌀 모내기를 했습니다. 통일쌀이란 봄, 여름에 농사지어 가을에 북녘에 전달하기 위해 경작하는 쌀을 말합니다. 첫째, 식량이 만성적으로 모자란 북녘동포를 돕기 위한 인도적인 목적이고 둘째, 평화와 통일이 곧 조국의 번영이라는 농민의 선언입니다.

처음은 2000년 남북 농민 회담에서, 북측 논농사가 비닐이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며 시작되었습니다. 전국 농민회에서는 북녘 못자리용 비닐 보내기 사업을 특별 결의하였고, 다음해 ‘6.15 공동선언 실현을 위한 북녘 못자리용 비닐보내기 운동본부를 결성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였는데 농민뿐만 아니라 49개의 시민단체, 노동자단체에서도 함께 해 주어서 4월 못자리가 시작되기 전까지 3개월 정도의 짧은 기간 모금으로 150여톤의 비닐을 보내는 성과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못자리 비닐보내기 사업으로 시작한 남북 농민 교류 협력은 한국 농업을 넘어 통일 농업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을 하게 되었고 곧 통일쌀 보내기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통일쌀 보내기 운동은 남북농업의 교류, 협력과 통일 농업의 필요성에 대해 국민의 이해를 얻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국내의 쌀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대북지원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만들었습니다. 수구, 보수세력의 퍼주기론을 제압하면서 정부의 대북지원 방침을 확정짓게 했고 한나라당의 대북지원 당론을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2007, 2008년에는 전국적으로 12만평이 넘는 통일쌀 경작지가 전국 농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경작되었습니다. 1톤차에 쌀을 싣고 전국에서 모인 트럭이 파주 물류기지 앞에서 통일쌀 북송 환영식을 했고 100여대의 트럭이 북측 개성까지 올라가 통일쌀을 인도하고 내려오기도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2년차인 2009년부터 남북관계는 급속히 냉각되었고 이에 따라 농민들이 생산해서 직접 전달해 온 통일쌀이 실제로 북에 전달되는 길은 모두 막히고 말았습니다. 맞습니다. 모두 막히고 말았습니다. 어느 세력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쉽게 막았고 일단 막은 길을 다시 잇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여전히 통일쌀 북송의 길은 막혀있지만 전국 농민들의 통일쌀 모내기는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통일쌀을 통해 교류, 협력의 현장을 경험했고, 통일쌀 교류를 통해 남북의 농민들이 서로의 실체를 확인했습니다. 국가 연합이든, 연방제든 통일 방법론이란 실제로 만나고 있는 남북 민중들의 실체에 이름을 붙이는 것 이상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농민들은 통일쌀을 통해 맞잡았던 서로의 손, 금강산과 개성에서 부둥켜 안았던 그 순간의 이름이 통일이었으며, 이 통일적인 현상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이 진정한 평화라고 생각합니다. 북녘 동포에게 보낼 쌀이 언젠가는 보내질 것이고 그 평화를 이어가기 위해 올해도 우리는 통일 경작지에 모를 내었습니다.

노동개혁, 연금개혁, 의료개혁 등 건드리는 국가 과제마다 실패하고 마침내 평화의 안전핀마저 뽑아버리는 것이 윤석열 대통령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가 되리라는 짐작을 하고도 남았습니다만, 이 위험한 정부를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겠습니까? 군사분계선 일대의 적대행위를 금지하는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와 이어지는 삐라 전쟁은 얼마나 바보같은 일들입니까? 오히려 우리 농민들의 통일쌀이 남북 교류 협력과 평화의 마중물이 될 날이 멀지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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