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의 낱말여행 / (86)만인계(萬人契)와 자빡계(자빡契)
■ 박일환의 낱말여행 / (86)만인계(萬人契)와 자빡계(자빡契)
  • 박일환 시인
  • 승인 2024.06.20 16:57
  • 호수 1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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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행성을 조장하는 계
박일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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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목포에 가면 마인계터로라는 이름의 길이 있다. 목포시 북교동에서 죽동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어떤 길이든 이름을 붙일 때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기 마련이다. 마인계터로라는 이름은 마인계를 하는 터가 있던 길이라는 뜻인데, 마인계의 본래 명칭은 만인계이다. 만인계를 편하게 발음하다 보니 마인계가 되었다고 한다. 만인계가 국어사전 표제어에 있다.

만인계(萬人契): <민속> 예전에, 천 명 이상의 계원을 모아서 각각 돈을 걸게 하고, 계알을 흔들어 뽑아서 등수에 따라 돈을 태우던 계.

제국신문 19001024일 기사에 따르면 1900년에 박창규와 진서윤이라는 사람이 목포에서 계표를 장당 엽전 5냥씩에 판매한 다음 당첨금을 제외한 1300냥을 도로수리비에 충당한다며 만인계를 설치했다고 한다. 당첨자에게는 계표 금액의 몇 배에서 수십 배에 이르는 금액을 지급하는 방식이어서 오늘날의 복권과 같은 성격을 띠었다고 할 수 있다. 목포의 예를 들었지만 만인계 열풍은 전국으로 퍼져 지역을 가릴 것 없이 성행했고, 추첨이 있는 날은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근처의 숙박업소와 상점이 큰 이익을 보기도 했단다.

당첨금을 지급하고 남은 금액을 공익사업에 쓰겠다는 취지는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그래서 최근에는 그런 취지를 이어받아 목포시 만인계 마을기업이란 걸 만들어 운영하는 이들이 생겼는가 하면 창원시에서도 만인계 복원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복권 사업이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오듯이 만인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너도나도 큰돈을 만져보겠다고 달려들었다가 재산을 탕진한 뒤 살인을 저지르거나 자살하는 등 여러 부작용이 생기면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단속에 나서곤 했으나 운영자들은 교묘히 방식을 바꿔가며 꽤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했다.

소설가 김남일이 한국 근대문학 기행이라는 표제를 내세워 펴낸 책 중 평안도 이야기편에 윤치호와 이광수의 아버지가 만인계와 관련해서 겪었던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한 글이 나온다. 윤치호가 1900년에 평안남도 진남포 감리로 발령받아 가서 가장 골칫거리로 마주친 게 만인계였다고 한다. 만인계가 부정한 방식으로 운영되는 데다 군수 등 고을 수령들이 뒷돈을 받고 만인계 설치를 허락하면서 축재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윤치호가 당장 금지시키려 했지만 평안도 관찰사까지 만인계를 통해 자신의 몫을 챙기고 있었던 터라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만인계 표를 사서 2등에 당첨된 적이 있는 이광수의 아버지 이종원은 자신이 직접 만인계 계주로 나설 작정을 한다. 그런 다음 돈을 끌어모아 모든 준비를 마쳤는데 하필이면 만인계 금지령이 내리는 바람에 그동안 들인 준비 자금만 허공에 날려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패가망신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만인계를 망신계(亡身契)라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만인계에 대한 통제가 심해지면서 그와 형식은 비슷하지만 조금 작은 규모로 조직한 계들이 다양한 이름을 달고 여기저기서 생겨났다.

자빡계(자빡): <역사> 산통계(算筒契)의 하나. 계원들이 곗돈을 내고 통에 든 계알을 흔들어 뽑아서 당첨된 계원은 정하여진 액수의 돈을 타고 동시에 계에서 탈퇴하도록 되어 있다.

만인계의 아류라 할 만한 것들로 납백계(納白契), 잡백계(雜百契), 작백계(作百契), 작파계(作罷契) 등이 있었는데, 자빡계는 잡백계나 작백계가 변해서 된 말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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