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기 의학칼럼
소아과 다니기
김성기 의학칼럼
소아과 다니기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4.06.07 00:00
  • 호수 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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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돌을 갓 지난 종훈이는 남들보다 잔병치레가 잦아 엄마와 함께 소아과를 찾는 일이 많다. 열에 기침, 콧물, 눈곱까지 끼고 우유도 잘 안 먹어 종훈이 엄마는 병원에 가면 물어볼 말이 많다. 병이 나으려면 얼마나 약을 먹어야 할지,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치료를 받으면 깨끗하게 좋아질 수 있는지, 소아과에 가면 자세히 물어보리라고 집을 나선다.

그러나 엄마는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상황이 여의치 않음을 금방 느끼고 만다. 대기실에는 이미 먼저 온 아기와 엄마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얼마를 기다려서야 진료실에 들어와 보니 의사의 표정은 한 눈에도 바쁘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진료는 속전속결로 진행된다. 몇 가지 문진과 진찰이 끝나고는 간단한 설명과 함께 간호사에게 이끌려 나오고 나니 무엇을 물어보려고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짧은 시간 내에 제대로 진료를 받기 위해서 요즘의 엄마들은 재치가 번득인다.  

설사로 아기를 데려온 엄마는 기저귀를 가져와 의사에게 변의 상태를 직접 보여준다. 기저귀 하나면 중요한 설명은 다 한 것이다. 어떤 엄마는 기저귀를 가져오기가 번거러웠던지 아기의 똥기저귀를 핸드폰으로 찍어와 보여주는 경우도 있었다. 아이디어가 기발했다. 한 엄마는 아기의 다리가 휜 것 같다며 아기의 다리를 여러 각도에서 카메라로 찍어 인화까지 해와 보여줘 필자를 감동시킨 일이 있었다.

바쁜 진료시간에 옷을 벗기고 꼼꼼하게 진찰이 되지 않을 것을 걱정해 집에서 미리 준비를 해온 것이다. 고열이 나서 아기를 데려왔던 엄마는 열이 올랐던 시간과 체온, 해열제를 먹였던 시간, 약의 양을 일목요연하게 적어와 진찰실 책상에 올려놓기도 한다. 육아일기를 가져와 아기의 증상을 읽어 주던 엄마도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다. ‘어디가 아픈지 진찰해 보세요’ 하고 아무 말 없이 손자를 내려놓는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필자 자신도 두 아이의 아빠이자 진료현장에 있는 소아과 의사로서 속도전을 방불케하는 우리의 의료현실을 생각하면 답답한 심정이다. 환자로서는 마땅히 충분한 시간동안 세심한 진료와 부족함이 없는 설명을 원하지만, 의료 제공자 측에서는 정신없이 바쁘게 환자를 보아야만 병의원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하니 환자와 의사 모두가 만족하는 진료는 답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서해내과병원 소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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