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 페스티발을 다녀와서
우리 술 페스티발을 다녀와서
  • 뉴스서천 기자
  • 승인 2004.09.03 00:00
  • 호수 2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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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5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인사동에서는 전통주의 활성화를 위한 작은 축제가 열렸다. ‘제1회 우리 술 페스티발’이란 이름으로 열린 이 축제는 농림부에서 주로 예산을 지원하고, ‘우리 술과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약칭 우술모)’에서 주최했는데 ‘우술모’의 공동위원장들의 면모는 이렇다.

정광모 한국소비자연맹 회장, 김성훈 전 농림부장관, 최불암 (사)웰컴투 코리아 시민협의회장, 현명관 전경련 부회장, 조정래 작가 등등. 전형적인 명망가 위주의 조직구조이고 몇몇 사람은 어떤 의도로 공동위원장을 위촉했는지 의아스러울 정도인데 주관이 더 가관이다.

‘우리 술 페스티벌 준비위원회’란 이름으로 KBS와 농수산물유통공사 공동주관하였다. 언론사든 공공기관이든 내용만 좋다면 행사를 주관하는 것에 시비 걸 이유는 없다. 그러나 관 위주의 행사가 대부분 그렇듯이 전시행사로 전락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행사장에 가보니 우려한 것보다 더 심각했다. 인사동 한가운데에 있는 ‘인사아트센터’의 지하와 지상 2, 3, 6층을 빌려서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지하에서는 술 시음이, 6층에서는 전통주 만들기라는 체험행사가 있었을 뿐 주 행사장인 2, 3층에는 장식물로 치장된 전통주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그야 말로 술 ‘전시’ 행사였다. 이럴 바엔 차라리 ‘우리 술 전시회’라고 명명했어야 했다.

물론 우리 술에 대한 홍보와 전시도 필요하지만 축제란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되는 행사였다. 축제는 사람이 놀 공간이 있어야 한다. 우리 술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우리 술이 주류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망에 대해서 고민하고 토론하는 장을 마련해주는 게 축제가 아닌가. 그러나 그런 장은 없었다.

주최측에서 준비한 특별행사도 ‘정광모 공동대표주최 소비자단체 참석 홍보행사’, ‘현명관 공동대표주최 재계인사 참석 홍보행사’ 같은 전시홍보행사만 있고, 우리 술의 저변확대를 위한 주세법 개정 방안이 무엇인지, 전통주의 품질균등화를 위한 노력은 어떻게 해야 할지 등, 시급한 문제들을 토론할 학술세미나 하나 없었다.

현재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술 동호인들만 해도 수천 명이다. 각자 취향에 따라서 ‘전통주동호회’, ‘와인동호회’ ‘자가맥주동호회’ 등으로 나뉘어서 활동하고 있지만 모두 술을 사랑하고 공부하고 있다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곡식이나 과일의 당분이 누룩과 물을 만나서 술로 발효되는 과정의 신비함을 느끼며, 술 빚는 과정에 들어가는 사람의 정성과 노고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또한 누가 돈 한푼 안 줘도 좋은 술을 만들기 위해서 자비로 연구활동을 하고 좋은 술이 있다면 불원천리 달려가는 이들이다. 그들에게 ‘술 페스티발’을 맡기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전시’만 있고 ‘축제’는 없는 ‘제1회 우리 술 페스티발’을 다녀와서 남는 건 덜 발효된 술을 마신 듯, 개운하지 못한 뒷맛뿐이었다. 그래도 그곳에 본 ‘한산소곡주’는 반가웠다.

<서천문화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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