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극복요? 자기 하기 나름이예요”
“장애 극복요? 자기 하기 나름이예요”
  • 최현옥
  • 승인 2002.05.02 00:00
  • 호수 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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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극복한 당찬 청년 이장엽씨

금은 그 광택을 발하기까지 뜨거운 용광로에 제 몸을 던지는 혹독한 시련을 격어야만 한다. 그래야 비로소 만인으로부터 사랑 받는 고운 자태를 선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원광보건대학 귀금속디자인과 이장엽씨(28·판교 후동리). 그는 용광로와 같은 뜨꺼운 죽음의 경지와 불구의 시련을 딛고 금빛보다 찬란한 삶을 일궈낸 의지의 청년이다.
“과거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현재의 삶이 중요하잖아요?”
장애를 격게된 경위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씨는 느리지만 강하게 말한다. 8년 전 사고로 뇌수술을 3번 받은 그는 지체장애 2급으로 말과 행동이 느린 편이다. 하지만 올해 대학에 들어가면서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학교에 들어갔을 때 나이가 많고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반 친구들과 어울리기 어려웠던 이씨. 하지만 지금은 교우들과 어울리기 위해 노력하며 학교에 적응해 가고 있고 교수들 사이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지난해 직장을 다니며 배웠던 세공기술은 빛을 발해 실기 부분에서 두드러진 두각을 보이며 장애인도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이고 있어 귀감이 되고 있다.
사실 오늘의 이씨가 불구를 딛고 당찬 청년으로 설 수 있도록 만든 것은 과거의 칠전팔기 때문이다.
사고 당시 식물인간이었던 그는 퇴원할 때만해도 한쪽 수족 사용이 어려웠지만 부모님과 자신의 끝없는 재활에 대한 노력으로 다시 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취업 알선을 위해 이력서를 들고 이곳 저곳을 누벼야 했던 이씨는 곧 사회의 장벽에 부딪쳐야만 했다. 이력서를 넣는 업체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기피하며 ‘집에 가서 기다리면 연락을 준다’고 외면을 한 것.
심지어 가까스로 취업한 천안 자동차 부품생산 공장에서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업주에게 심한 모멸감을 느끼며 근무해야만 했다. 실제로 업주는 이씨가 장애자라는 이유로 불량품이 나오면 모든 책임을 그에게 돌리며 폭력을 행사했고 그의 몸 상태를 알고 고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행동이 느리다며 급료 한푼 없이 고용한지 한 달만에 잘라버리고 만 것이다.
이런 아픔 속에서 이씨는 꺽이지 않고 다시 서기 위해 다른 업체에 들어가고 광고지를 통해 알게된 서천 종천농공단지 내에 있는 장애인자립센터에 취업을 하게 됐다. 그 곳에서 세공 일을 배우며 자신이 만든 귀금속이 누군가를 더 돋보이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쁨과 보람을 느낄수 있었고 동료 장애인들과 센터 관계자들의 따뜻한 애정 속에서 대학 진학의 꿈마져 이룰 수 있게 된 것이다.
“푸른 캠퍼스와 강의실, 교수님 이런 단어로도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는 이씨는 대학 진학을 통해 금은방을 경영하고 싶은 당찬 포부를 실현시키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이장엽’이라는 이름보다 장애라는 말이 먼저 따라오는 그에게 현재 이 세상은 넘어온 산보다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더 많다. 오늘도 어둠 속에서 고귀한 빛을 발하는 삶을 일궈 내기 위해 자신을 뜨거운 용광로에 던지며 갈고 닦는 이씨야말로 이 시대 많은 청년들에게 ‘도전’과 ‘용기’와 ‘신념’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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