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명 창
귀 명 창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5.01.07 00:00
  • 호수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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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경 진 / 서천문화원 사무국장
어쩌다 전주에서 글 쓰는 선후배 작가들을 만나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한번씩 묻는 일이 있다. 시는 쓰냐, 등단도 해야될 것 아니냐. 등등. 그러면 난 써야지요, 아직 실력이 안되니까 별 수 없는 거고 언젠가는 이름을 얻는 날도 있겠지요, 라고 난 의례적으로 대답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영영 시를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어느 날. 난 후배들에게 말했다.

시를 못 쓰더라도 좋은 시를 알아 볼 수 있는 고급독자로만 남아 있어도 의미있는 게 아닐까싶어. 전주가 소리의 고장이 될 수 있었던 건 좋은 소리를 듣고 즐길 수 있었던, 그래서 옥석을 구분할 줄 알았던 귀명창이 많았기 때문이야. 귀명창이 사라지면 명창도 나올 수 없어.

작가도 중요하지만 그 창작품의 가치를 알아보고 음미할 수 있는 독자가 없으면 좋은 시인은 나오기 힘들지. 밤하늘을 가득 채우는 수많은 별들 중에 이름을 얻은 별은 극히 일부이고 대부분 밝은 빛을 발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이름난 별들보다 더욱 반짝이고 아름다운 '이름 없는 별'들도 많아.

그 별들을 찾아서 명명하는 자가 시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 별들이 바로 시인이 아닐까싶어. 그럼 그 시인들은 누가 봐주겠니. 바로 나 같은 사람들이지. 나 같은 존재가 있어야 너희들 같은 좋은 시인이 나오는 거지. 어때 의미 있는 일이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말이 현실임을 다들 알고 있었다.

해마다 겨울이 오면 신춘문예 열병을 앓기도 하고 계간지에 투고도 하면서, 어쩌다 원고평에 내 이름이 올라오기라도 하면 거의 등단한 것처럼 들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한 발짝만 더 가면 될 것 같은데 그 한 발짝은 아득한 거리였고 허공의 시간이었다. 2% 부족한 건 알겠는데 도무지 채워지질 않았고 시는 되는데 나만의 언어는 완성되지 않았다.

일 년에 습작품을 3백 편 이상 쓰고 시집을 1,2백 권씩 읽었던 5년의 시간이 갑자기 정지되는 듯하였다. 시가 되는 작품과 안 되는 작품을 어느 정도 골라낼 수 있는 '詩眼'이 뜨이게 되자 내 시의 부끄러운 부분도 보였다. 자르고 잘라도 부족한 게 남아있는 작품들은 다 버렸다.

내 손에 쥐어진 시는 단 10여 편뿐이었다. 갈수록 시 쓰는 게 어려워졌고 무서워졌다. 때맞춰 그때 실연까지 하게 되었다. 정말 한 2년을 짐승처럼 살았다. 갑자기 詩도 시시해져버렸다. 메모지를 버렸고 시집도 놓아버렸다. 점점 시는 나에게서 멀어져갔다.

작년 초 故박배엽 시인의 장례식장에 갈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나를 시인의 길로 인도했던 박배엽 시인의 죽음은 화두로 남겨졌고, 그 화두는 창작에 대한 욕망을 소환시켰다. 그러나 시는 쉽사리 되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다시, 문학회의 옥탑방 낡은 문을 두드리던 10년 전 어느 가을밤으로 돌아가야 한다. 혹시 시가 영영 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되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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