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것들과 살기
사라져 가는 것들과 살기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5.01.28 00:00
  • 호수 2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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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천 수 / 자유기고가
겨울입니다. 언젠가부터 이상기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날씨가 예전과 많이 바뀌었다는 말을 잘 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겨울은 삼한사온이었다고 합니다. 대륙성 기후와 해양성 기후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 겨울을 더욱 매섭게 지나도록 하였고, 이런 혹독한 시절을 지난 후에야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시인들은 봄을 벅찬 삶의 모습으로 노래하였으리라 생각됩니다.

요 며칠 기산면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여느 농촌이 그러하듯이 마을에는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윷도 놀고 화투도 하고 간단한 술상에 세상사는 이야기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향토민속조사> 때문에 왔다고 어르신들께 몇 마디 물으면 대부분의 대답이 옛날에는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안 하냐고 물으면 젊은 사람이 없어서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번 문화원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마을 공동체를 지탱해주었던 매개들입니다. 마을 주민이 함께 사용하던 우물과 쉼터의 역할을 했던 정자나무나 모정, 그리고 마을 주민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냈던 마을 제사나 마을 잔치, 그리고 그러한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 이야기입니다.

기산면 외산정리는 1992년까지 음력 정월 초에 당산제를 지냈다고 합니다. 당산제를 준비하는 제주와 굿잽이는 몸을 정갈히 하기 위해 당산제 며칠 전부터 찬물로 목욕하고, 제주의 집에서는 그 해에 사용할 제기를 새것으로 사고, 마을 주민들은 제사를 위해 정성을 들인 음식과 돈을 준비하였다고 합니다. 제사는 마을 뒷산에 올라가 마을 사람들(출향민까지 포함)의 이름을 축문에 전부 올려서 마을과 각 가정의 안녕과 무사를 기원하였습니다.

1992년도에 마을사람들이 모여서 당산제를 계속할 것인가를 두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는 하지 않는 것이었고, 이유는 할 사람이 없어서였다고 합니다. 기산면 온공마을 가운데에는 얼마 전까지 사용했을 것 같은 우물이 있습니다.

우물의 기원 년도는 알 수 없지만 아무리 가물어도 이 우물은 마르지 않고 물맛도 좋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그래도 음력 칠석날이면 우물 청소로 마을 사람들이 모인다고 합니다.

우물을 품어내어 좋은 물을 마을사람들이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옛 어른들의 생활관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우물이 다시 마을의 중심으로 살아났으면 하는 바람도 주민들의 입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껏 마을 공동체를 지탱해 왔던 많은 것들이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세상은 돌고 돈다고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옷차림이나 먹거리의 유행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개별화가 심화되면 공동체에 대한 그리움도 또한 깊어질 것입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고 있습니다. 그 변화 가운데서도 가장 파괴가 심한 것이 마을 공동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변화를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발전의 그 근본에는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동체는 한 번 파괴되면 회복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조금은 늦었지만 이제는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관심을 갖고, 그것을 계승하고 보존하며, 그것들과 함께 살아갈 준비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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