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환 &권진원 인물탐구
안치환 &권진원 인물탐구
  • 김정기
  • 승인 2002.05.16 00:00
  • 호수 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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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에서 대중의 곁으로” 한결같은 진솔함 노래하는 안 치 환
80년대 언저리에 대학을 다닌 사람이라면, 굳이 운동권이 아니라해도 한두 소절 쯤은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가 바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이다.
당시 대학생들에게는 최고의 인기곡이었던 이 노래를 비롯, ‘잠들지 않는 남도’,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철의 노동자’ 등 민중가요의 고전이라 불릴 만한 노래들을 이 땅에 탄생시킨 이, 그가 바로 안치환이다. 이들 모두가 대학 3, 4학년 때 ‘장영준’이라는 가명을 써서 만든 노래들. 그렇듯 안치환은 강건한 투사의 이미지로 처음, 사람들에게 다가섰다.
그는 악곡과 가사를 조화시키는 음악적 감각을 타고났으며 대학 시절 그 재능은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1984년 대학에 입학한 그가 그토록 좋아하는 노래를 하고 싶어 가입한 동아리가 바로 연세대학교 중앙 노래패 ‘울림터’. 이 작은 선택은 훗날 그를 ‘운동권’ 이미지로 떠올리는 주원인이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를 대중적인 이미지로 자리매김하도록 만든 것은 4집 앨범이다. 이 앨범에 수록된 서정적인 포크곡 ‘내가 만일’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결혼식에서 가장 많이 불려지는 노래로 뽑히기도 했다. 4집을 발표하면서 락으로 다시 한 번 음악적 변신을 하면서 그는 자신의 밴드 ‘자유’를 결성, 함께 활동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듣기 좋은 허스키한 목소리에 호소력 넘치는 그의 창법은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그만의 색깔을 갖는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매력이 100% 발휘되는 곳이 바로 공연장. 90년 라이브 공연을 시작한 이래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무대에 올랐는가 하면 한 달씩 계속되는 장기 공연도 마다 않는 그는 진정한 이 시대의 노래꾼이라 할 수 있다.
민중가요에서 포크로, 락으로, 다시 포크로 성공적인 음악적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그는 확실히 동시대 다수의 대중가수들과는 구별되는 자신만의 색채를 가졌으며 그러한 그의 행보에 기대를 걸게 되는 것은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한결같은 진솔함과 노래에 대한 변치않는 애정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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