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아침안개와 장항
6월의 아침안개와 장항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5.06.17 00:00
  • 호수 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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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희 / 서천주부독서회 회장

누구나 언제 보아도 그리운 곳이 있다면 고향일 것이다. 영혼을 넣고 볼 수 있는 곳, 마음 가는 데로 몸이 움직일수 있는 곳, 보고 있어도 항상 그리운 곳이 나는 고향이라 애칭 해본다. 인간의 목숨을 담보하는 강물이 항상 사시사철 알맞은 걸음으로 움직이는 그 폼이 제법 나이 많은 여인네의 발걸음처럼 쇠잔한 고향일지라도 고향은 사랑스럽다.

백일홍이 피기 전에 떠나야지 하며 뒤를 돌아다보면 못내 떠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추어선 나에게 자본주의의 부를 가져다주진 못했어도 아니 부를 잃어버린 그 순간에도 떠나야하는 마음은 어설프게 망설임만 가득하게 했던 영혼을 팔고만 고향이기도하다.

산을 파헤치고 바다를 막고선 하구언의 긴 다리를 지나기 전 또다시 강을 막은 그 길에 철로를 연결할 시간이 분초를 다투며 다가온다. 그로인하여 첫정을 잃어버릴 날이 다가오는 장항선의 역사가 오늘따라 애처로운 생각이 든다.


잊혀지고 남루하고 보잘 것 없어도 또 가난해도 눈물나게 해도 아름다운 것은 눈물나게 아름다운 것이다.


고장의 건설이라는 것이 부(富)를 가져다주지 못해도 언제나 포크래인이나 기중기는 야트막한 언덕을 가로 막고 내 고향의 허리를 분지르고 짓밟고 있으니 슬프다. 저 언덕을 부수면 우리에게 오는 것은 무엇이며 마음마저 황폐하여 온다면 여기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언제나 고향을 재산처럼 여기며 살아 온 자들은 안다. 푸른 토끼풀꽃을 베어 난 자리에도 우정은 돋아나며, 밟고 밟아도 잔디들은 검은 씨를 올해도 준비하고 있으니, 6월 고향 아침언덕은 밤꽃향기가 바다를 돌아 온 물결 닮아 고향처럼 감미롭고 반갑다.

열망의 여름은 쉬이 오지 않는다. 봄 같은 여름, 여름 같은 봄이 몇 번을 거듭 몇 번인가 반복하며 여름이 다가오는 것을 알면 장항 사람이다. 그래서 장항에는 봄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말하는 사람들이 나와 우리들이다.

큰 오라버니의 친구의 딸이며 딸의 친구인 지희네 담장에 탱자나무 꽃 피고지고 부드러운 가시가 초록부리를 만드는 6월이 가면 진정 보이는 여름이 눈에 들어 올 것이다. 힘없는 음지의 고사리가 키를 재며 앞 다투고 담배초의 꽃들이 묵정밭을 돌고 돌아 내일처럼 안개가 자욱한 고향의 아침은 사방이 쑥 천지다.

진달래 지고 철쭉 진 자리 옆을 돌아 땡감나무 잎새는 날로 부풀어 올라 꼭 고향에서 첫애 가진 임신부의 젖 가슴처럼 봉긋봉긋 수줍음에 어쩔 줄 모르며, 목욕탕에서 만난 스무 살의 소녀티를 벗지 못해 준비하지 못한 어머니가 되려는 어릴 적 내 친구 닮았다.


사시사철 푸르다는 소나무의 빛을 보니 누런 송화 가루가 날아간 자리에 늙고 붉은 벌레가 축 잃어버린 송화가 늘어진 나뭇가지 사이에 회색의 솔방울이 푸른 솔방울에게 소나무의 전설을 들려주듯 간지러운 바람이 불고 있으며, 소나무를 타고 오르려는 담쟁이와 인동초의 덩굴손이 하늘 아래 어려운 관문을 뚫고 오르려는 모습은 일터를 가지려는 젊은이들 취업전쟁의 초상처럼 애처롭다.


푸른 손수건처럼 넓은 잎을 가진 오동나무의 잎새들의 그늘 만드는 손들의 수고스러움이 어제와 오늘이 다르게 지각없는 공중에서 영토분쟁에 바쁜 하루를 보내겠으며, 보라 빛 산딸기의 꽃이 지천으로 피어나 좀더 빠르게 열매를 알알이 맺고자하는 소망이 하늘을 열 듯 소리 없이 덜 깬 대지를 지키고, 묵은 닭 우는 소리에 지휘봉들은 뻐꾸기 노래 소리에 새들은 일제히 아침의 잠에서 깨어나 제각기 자기의 목소리에 취한 체 아침의 교향곡을 읊어 대니 이곳이 여름철새의 파라다이스다.

농부는 거름기 올라 모가 벼포기로 이름을 달리한 논과 논 사이에 걸음을 멈추고 검은 비닐 주머니를 호주머니에서 꺼내 마디마다, 굵디굵은 손가락으로 논두렁에 손가락을 호미삼아 서리 테를 심으니 참으로 어떤 의사보다 생명을 살리는 귀한 손이다.

아카시아 꽃이 가고 없는 자리에 푸른 동그라미를 예닐곱 개를 매달고 서있는 가지를 꺾어 손톱에 반질반질하게 칠하며 이파리 하나하나 떨구며, 가위 바위 보를 내밀던 동무는 가위 바위 보하듯 도회지의 꿈을 향하여, 동네를 떠나던 날이 마지막 인사처럼 들리던 그 날이 고향에서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울어대던 그 밤의 어린 것들의 생각은 맞았다.

그 후로 한번도 같이 날을 샐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고향을 찾아와도 제 어머니의 품만 잠시 스치고 갈 뿐 말 한마디 없이 왔다 갔다는 소리를 들었으며 제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묘에 몇 번 오가더니 종무소식인 여자들의 우정에 토끼풀의 향내는 여전해도 아카시아 꽃 지듯 우정은 이미 졌으며 나 또한 그러려니 했으니 말이다.


뻐꾸기 둥지 위에 알알이 정만 새기고 가던 가시나의 우정이라는 것은 남정네의 우정과는 사뭇 다르니 내 딸에게는 정주지 말라며 친구는 새로 사귀면 친구며 멀리 있는 친구보다 가까이에서 있는 친구를 귀하게 여기라는 말을 하면서 애써 웃어넘기는 인간의 초상을 내안에서 본다. 그래도 딸은 말한다.


“잘 살아도 그럴까?”


그렇게 아이가 자본의 논리로 성장하고 가난이 내게 밀려와도 떠나지 못하는 내 고향 6월의 아침이 나는 좋기만 하다. 잘사는 것이 무엇이냐는 반문을 그 애에게 말할 수 없는 어미의 심정을 이해하는 날이 어서 오길 빌어볼 뿐이다. 나처럼 내 아이가 이 땅을 지키며 인간의 최대의 행복은 고향에서 살아내는 일이라고 그 진리가 맞닥뜨려지는 날 난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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