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암리 ‘다시 신바람 불어라~’
장암리 ‘다시 신바람 불어라~’
  • 공금란 기자
  • 승인 2006.02.17 00:00
  • 호수 3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항제련소로 울고 웃던 장암리 대보름 잔치
방인규 씨 마을회관 신축금 5천만원 쾌척
▲ <사진/공금란 기자> 기벌포 관문, 전망산과 후망산이 바다를 지키고 장암진성이 외적의 침임을 막아내던 곳, 이곳이 바로 장암리(이장 방훈규)이다.장항제련소가 들어오기 전, 질구지 기벌포에는 온갖 조개류가 발에 채이고 고깃배와 화물선이 드나들어 인파가 넘치고 씀씀이가 컸던 마을이랬다. 이후 장항제련소가 들어와 갯벌은 많이 잃었지만 그 때도 사람과 돈은 흔한 마을이랬다.그러나 하나둘 공장이 들어서면서 방파제가 만들어지고 해안도로가 뚫리면서 갯벌이 사라졌다. 또 장항제련소의 용광로가 꺼지면서 사람들이 이리저리 떠났다. 현재 장암리에는 120가구 300여명이 살고 있지만, 대부분 노인들이다. 녹슨 양철지붕이나 스레트 지붕이 새마을 운동의 칙칙한 역사를 대변하고 있을 뿐 희망의 색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때문에 엉터리로 보수된 장암진성벽이 오히려 더 현대적 구조물로 보일 정도이다. ▲ 현재 장항의 모습
모순되게도 서천군에는 사람이 많이 사는 장항읍과 서천읍내에 마을회관이나 노인정을 가지고 있는 마을이 드물다. 장암리 역시 마을회관이 아직 없다.

그래서 이 마을 어르신들은 여름이면 빈약한 정자나무 그늘을 의지한 평상에 모여 담소를 나누지만 겨울이면 마땅히 모일 곳이 없었다.

이 일을 안타깝게 여긴 몇 젊은이- 젊다고 해야 50세 전후-들이 마을회관을 걸립하기로 결심하고 지난해 ‘마을회관 건립 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 추진위원장은 이 마을에서 나고 자라 장항제련소에 들어가, 지금은 엘에스 산전 노조위원장이 된 설광섭 씨가 맡았다.

설 위원장은 “동네 주민들이래야 자식들한테 그저 용돈 조금씩 받아쓰는 어르신들이라 기금 마련하는 게 그리 쉽지 않다”고 했다. “왕년에 우리 마을을 생각하면 너무도 속상하고 자존심 상한다”며 꼭 어찌해보겠노라고 기자에게 연전에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지성이면 감천이랬다.

어려운 시절 이 마을에 살다가 객지로 나가 화물차 조수부터 안 해본 일이 없다는 방인규(47세)씨가 이 소식을 듣고 지난해 2천만원을 보태더니 이번 대보름날에 다시 3천만원을 마을회관 신축기금으로 내놨다.

이에 화답하기 위해 청년회(회장 이광복, 44세·남)가 ‘장암리 주민화합 한마당 잔치’를 벌인 것이다. 뒤질세라 어르신들이 돼지 한 마리를 내서 오랜만에 이 마을에 풍장이 울려 퍼졌다. 이광복 회장은 “왕년의 장암리 명성을 회복하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다졌다.

   
▲ 방인규 씨
방인규 씨는 중앙초등학교 25회 졸업생으로 다 같이 어려웠던 시절 군산으로 건너가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일을 거쳐 오늘날 탄탄한 중소기업 ‘주식회사 하이덱스’를 일궈냈다. 하이덱스를 모기업으로 사료사업, 장치산업, 유통사업까지 영역을 넓혔다.

“큰 회사는 아니지만 오늘 여기까지 왔으니 기업이 돈을 벌었으면 사회에 환원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는 방인규 사장은 “환원을 하더라도 우선은 내 고향에 하고 싶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부인 안경춘(47세)씨도 이일에 적극 동의하고 이날 함께 참석해 마을 아낙들과 음식을 나눴다.

방인규 사장은 얼마전 종천면 당정리에 ‘하이덱스 휴양관’을 건립하고 직원들 교육이나 수련회를 이곳에서 실시한다. “그래야 내 고향에 한 푼이라도 보탬이 될 거 같아서”라는 게 방 사장의 뜻이다.

방인규 사장은 3억원을 출자해 ‘하이덱스 복지재단’을 설립하고 또 매년 3천만원의 운영비를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라면서 서천사회 어려운 사람들이 자활의 길을 찾는 데 보탬이 되길 바라고 있다.

올 대보름날 장암리에서 울려 퍼진 풍장소리처럼, 또 휘영청 떠오른 보름달처럼, 장암리 주민들의 꿈이 꽉 차게 이뤄지길 기대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