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를 줄여야 산다
속도를 줄여야 산다
  • 뉴스서천
  • 승인 2002.06.20 00:00
  • 호수 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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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컴퓨터실에서 아이들이 컴퓨터 수업을 하는 것을 보았다.
인터넷으로 학교 홈페이지를 불러내어 이 메일도 보내고 자유게시판에 의견도 올리는 공부였다.
컴퓨터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나의 눈에 놀라운 모습 하나가 들어왔다. 인터넷이 빨리 불려나오지 않으니까 한 아이가 자판기를 심하게 두드리다가 나중에는 컴퓨터 모니터를 탕탕 소리나게 두들기는 것이었다.
컴퓨터가 얼마나 빠르고 편리한 기계인가.
그 짧은 기다림의 시간을 참지 못하고 아이가 저러는 걸 보면 우리네 어른들의 빨리 빨리, 그 조바심 병이 아이들한테도 깊숙이 스며든 모양이다.
요즘 우리들은 누구든 그 무엇이든 진득하게 참을성 있는 구석이 없다. 그저 빠르게 직선으로 내달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우리들이다.
우리들의 이 조바심 병은 길거리에 나가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사거리 같은 데에서 신호 대기하던 자동차가 일초만 머뭇거려도 뒤의 차가 빵빵거리고 식식거리고 야단이다. 그렇게 빨리 서둘러 가서 무엇을 하겠다는 건가.
아스팔트 위에 올라서기만 하면 차들은 으르렁거리며 내달리는 맹수가 된다. 분노가 이글거리는 총알이 된다. 그건 너 나 할 것 없이 그렇다. 웬만치 차가 빨리 달려선 빨리 달린다는 실감을 느끼지 못하는 우리들이다. 우리 모두 속도 불감증에 걸린 것이다.
속도를 좀 줄일 수는 없을까. 빨리 가고 싶어하는 마음을 조금씩만 포기할 수는 없을까.
요즘 자동차 도로를 새로이 만드는 걸 보노라면 참 가관이란 생각이 든다.
예전엔 마을도 피해서 가고 골짜기도 피해서 가면서 길을 만들었는데 요즘엔 기술이 발달해서 그런지 막무가내기 식이다.
잣대로 줄을 긋듯이 그어 마을이고 산이고 길이고 강이고 할 것 없이 건너 뛰어가고 마구잡이 식으로 잘라낸다. 그저 넓게 곧게 빠르게 하는 것만이 지상 목표이다. 요인이야 여러 가지 있겠지만 상당부분 미국식 문화와 정신의 영향이 크다.
미국 문화의 근본은 직선과 속도에 있다. 그래서 효과제일주의, 속도제일주의로만 나아간다. 지극히 동물적이고 찰나적, 향락적이다. 또 폭력적이고 외설적이기도 하다. 이것은 헐리우드 영화를 만 보아도 그렇다. 치고 받고 때리고 부수고 부둥켜안고 헐떡거리는 동물적 야성만이 가득한 것이 헐리우드식 영화이다. 폭파장면이 나오고 총 맞고 죽는 사람이 나와야만 영화가 끝나는 것이 그들 영화의 전형이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이러한 헐리우드식 분위기가 아니면 만족을 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어느새 미국식 문화가 우리들 정서 깊숙이 들어와 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미국 문화의 식민지 백성이 아니라고 우길 재간이 없다.
우리의 문화와 정신은 곡선에 있고 뜸들임과 삭힘에 있다. 모두 굽어 가는 길이다. 멈추었다 가는 과정이다.
굳이 이런 얘기를 하기 위해 중국 문화는 볼륨(量)에 있고 일본 문화는 칼라(色)에 있고 한국문화는 라인(曲線)에 있다고 설파한 일본인 학자 야나기 쇼에스(柳宗悅)의 묵은 학설을 들출 것까지도 없다.
우선 우리의 산이 둥글고 부드럽고 곡선이다.
그래서 하늘이 둥글고 부드럽고 깊고 강물과 길과 들과 사람의 삶까지도 둥글고 부드럽고 깊숙한 맛이 나는 것이다. 여기서 바로 우리의 태극문양(太極紋樣)이 비롯되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 산이고 강이고 들판이고 마을이고 심지어 조상의 무덤이고 할 것 없이 마구잡이 식으로 자르고 타고 넘어가는 큰길 만들기, 그 경쟁과 유행을 우리의 후손들은 과연 잘했다 칭찬해줄 것인가. 아니면 나무랄 것인가. 그때까지 살아보지 않아서 모르긴 모를 일이로되 자못 걱정스러운 일이다.
우리에겐 우리의 아기자기 금실로 수를 놓은 듯한 산과 강, 그러니까 금수강산만이 재산이요 보배다. 그걸 아직껏 우리가 깨닫지 못했다면 우리는 분명히 어리석고 한심한 백성들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 모두가 망가지고 만다. 끝내 충돌하고 만다.
지금 우리는 무한궤도를 무제한 속도로 달리는 고장난 자동차들이다.
속도를 줄여야 한다. 쉬엄쉬엄 숨을 돌리며 가야한다. 그 길만이 우리가 살길이다.
우리도 이제는 충분히 그럴 때가 되었다. 생각해보시라.
넓고 곧은길을 갈 때 차가 더 사나워지는가. 아니면 좁고 굽은 길을 갈 때 차가 더 사나워지는가. 좁은 길, 굽은 길에서는 차들도 사람들도 다 온순해지고 착해진다. 겸손해진다. 우리는 본래는 그런 백성이었다.
굽은 길, 좁은 길, 에움길에서 우리의 어질음과 겸손과 염치와 예의가 태어났다.
늦기 전에 돌아가야 한다.
생각을 바꾸고 삶의 방향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어야 한다.
속도를 줄이자. 조금씩만 포기하자.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속도를 줄이는 길만이 우리가 살길이다.
<나태주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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