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귀향길
머나먼 귀향길
  • 백채구 기자
  • 승인 2006.06.08 00:00
  • 호수 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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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전쟁 중 실종돼 전사자 처리됐던 이모(사망당시 75세) 중위가 북측의 국군포로로 살아 있다가 딸과 함께 지난해 탈북을 시도하던 중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행히 딸 이모씨(48세)는 탈북에 성공해 중국을 경유 납북자가족모임의 도움으로 아버지의 땅으로 돌아와 현재 정부가 제공한 대전의 한 임대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현충일이던 6일, 마침 이모씨가 특화시장에서 활어상을 하는 숙부(72세)의 집을 방문했다며  취재를 요청해 이씨를 만났다. 이 자리에는 그녀의 탈북을 도운 인사도 함께 했었다.
기자가 우려했던 것처럼 그녀는 취재 당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기자의 질문에 묵묵부답 하는 그녀에게 함께한 이들이 “괜찮으니 이야기 하라”는 주문이 있고서야 말문을 열었다.

이씨는 “대신 고향에 가 달라”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천신만고 끝에 남한에 왔다고 밝혔다.
그리고 다음날 취재원에게 보도를 유보해 달라는 뜻밖의 전화가 왔다. 이씨가 “친지들에 대한 서운하다”며 “다신 연락조차 하지 않겠다’고 말한 뒤 거주지로 돌아갔단다. 

남북분단 60년, 이산가족의 아픔을 안고 남북에서 따로따로 태어나고 자란 후세들이 한 순간에 혈연이라는 이유로 모든 벽을 허물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생활도, 교육도, 문화도 모두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씨 역시, 그토록 그리던 아버지의 고향이지만 친지들에게 서운한 마음으로 고향에 정착하지 못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는 현실이 슬펐을 것이다.

또 원주민이든 납북자, 국군포로든 탈북자 가족을 맞는 남쪽의 가족들도 만남의 기쁨 이면에 나름대로 부담이 있을 것이다. 탈북과정에 드는 경비나 정착을 돕는 일 등은 분명 현실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탈북자는 남측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혈혈단신으로 탈북에 성공했다 치더라도 적응과정에서 부딪치는 일이 많아 고통이 클 것이다.

미국이 악착같이 해외 파병 미군의 유해 발굴, 포로송환에 노력한 것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말 그대로 방치해왔다. 이제 남북의 교류와 탈북자에 대한 북의 경계가 느슨해진 틈을 타 남측으로의 귀환을 평생 꿈꾸던 이와 그의 자녀들이 돌아오고 있다.

어쨌거나 서천에서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국군포로 가족이 돌아왔으나 두 가족 모두 서천에 정착하지 못했다.

주거환경이 갖춰지지 못했거나, 탈북자에 대한 이웃들의 시선을 의식해 아예 모르는 곳에서 정착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자는 현충일에 만나 이씨와 그 친지들과 오해의 벽을 허물고 아버지의 땅 서천에 정착해 소원대로 꽃집을 운영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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