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생각 - 고교입시부활에 대한 사고(思考)
독자생각 - 고교입시부활에 대한 사고(思考)
  • 뉴스서천
  • 승인 2002.08.22 00:00
  • 호수 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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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충남교육청이 고교입시부활을 발표했군요. 발표대로 한다면 대부분의 교사와 학부모가 그것을 찬성했다더군요.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면 충남교육청은 당연한 정책을 수립한 것이겠군요. 그리고 적어도 그 후유증에 대한 비난은 피할 수 있겠군요. 그러나 나의 가슴이 쓰리고 미어집니다. 입시부활을 반대해오던 나로서는 처참한 기분입니다. 이제 먼 훗날이나 기약해야 할까요?
일전에 학생생활지도 연수에 갔더니 충남의 중등교육을 책임지시는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캐나다 같은 나라는 엄청난 땅덩어리에 인구는 얼마 안돼 일자리 많아 놀고먹어도 괜찮으니 열린교육과 같은 느린 방식으로 공부해도 되지만, 우리같이 좁은 땅덩어리에 인구만 많은 나라는 지금처럼 경쟁교육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다고요. 그러면서 자원이 하나도 나지 않는 우리나라가 발전한 것은 오직 인적자원을 길러낸 교육의 성과라는 것도 덧붙였지요.
나는 이에 교육의 성과를 말하는 것은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교육은 오직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낸 인간이 만든 가장 놀라운 기획이지요. 그러나 캐나다의 비유는 아주 나쁜 비유네요. 그러면 아르헨티나나, 칠레나, 소말리아는 어떻게 설명하실래요? 그리고 또 스위스는 어떻게 설명할래요? 스위스는 인구밀도가 우리의 두 배가 될 뿐더러 국토의 대부분이 산악지대에다가 면적은 우리의 절반도 안되지요. 그런데 그 나라는 주당 4일밖에 수업을 안해요. 그 나라는 옛날에는 너무 가난해서 남의 나라 전쟁에다 젊은이들을 팔아서 먹고살던 나라죠. 풍요란 단지 국토면적이나 인구가 문제가 아니라, 그 문화적 내용과 성격으로 좌우된다는 사실을 왜 성찰하지 않으시는지요?
그간 우리나라 발전의 원동력이 교육을 많이 받은 인적자원이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좋은 교육정책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국민들의 자발적인 교육열 때문이었지요. 그렇지만 이제 그것만으로는 안된다는 겁니다. 세상이 살기 좋아진다는 것이 무조건 돈만 번다고 되는 것도 아니며, 그리고 그런 주입식 방식으로는 더 이상 질 좋은 인재를 양성해 낼 수도 없다는 겁니다. 세상이 또다시 바뀌고 있기 때문이지요. 세계에서 제일 많이 일하는 나라가 왜 IMF를 맞이했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분의 발상의 가장 나쁜 점은 좋은 사회에 대한 성찰이 전혀 없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나라는 사람만 많으니, 서로 생존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아이들을 경쟁의 전사로 키워야 그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 될 거라는 생각이 아니십니까? 그래서 아이들을 그렇게 키우기 위해 오직 밤낮으로 경쟁의 도가니에 몰아넣는 현 교육을 강행하자는 것이지요. 그분은 동물세계와 다를 바 없는 인간사회를 생각하고 계시는군요. 모든 학부모들은 또한 내 자식만은 낙오되지 않게 하기 위해 더욱 사교육에 뛰어들고, 또 그것은 경쟁을 더욱 심화시키는 아수라 교육을 만들어내겠지요.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그런 사회에서는 항상 몇몇 사람의 승자만 남을 거라는 겁니다. 결국 대다수 학부모와 학생들은 패자로 남게 되겠지요.
저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육이란 인간을 동물과 다른 문화적인 존재로 키워내는데 그 가치가 있다고 말입니다. 그것은 인간을 동물과 다르게 만드는 힘이지요. 오히려 교육은 모두가 승자가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것이어야 하며, 그래서 우리는 교육을 그저 시장에 맞기지 않고 국가가 책임지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현재 우리의 교육은 조선시대 선비교육만 못합니다. 그들은 반대로 교육을 했지요.
“찬물 먹고 이를 쑤셔도 앎이 있으면 배고프지 않다.”
왜 그런 교육을 했을까요? 당시 양반들, 그러니까 권력을 가진 자들이 오직 자신의 배를 부르기 위해 아귀다툼을 한다면 세상은 어찌 되겠습니까? 백성은 배를 주리고, 걸인이 되며, 산적이 되고, 결국은 세상은 붕괴겠지요. 그들이 앎으로 배를 채우고 청렴하게 살려 노력함으로써 가난했던 그 시절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 정신이 해이해지면서 조선은 망했지만요. 그러나 그때보다 수백, 수천 배 잘 살게된 지금에 와서도 항상 허기와 경쟁의 아수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요? 보다 풍요롭고 여유롭게 살지 못하는 걸까요? 교육이 거기에 대해 책임이 없습니까?
물질적인 풍요가 더욱 더하는 세상에 학생들의 탈선은 갈수록 심해져만 갈까요? 그것이 과연 그들의 책임일까요? 생각해 보셨습니까? 오직 경쟁밖에 없는 정글 같은 학교에서 경쟁에 밀린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요. 경쟁에서 밀리고 더 이상 설자리가 없다고 느낀 학생들이 더 이상 참고 견디기를 바랄 수 있을까요? 그들에게 담배피지 말라고요? 본드하지 말라고요? 미래를 생각해서 그러지 말라고요? 그들이 과연 그렇지 않고 견뎌야 할 미래를 볼 수 있을까요? 그들의 자리를 만들어 주지 못하는 학교가 그들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겠습니까? 내가 놀라웠던 것은 탈선학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해야 할 자리에서 충남의 중등교육을 책임져야 할 분이 오셔서 그런 경쟁제일주의만 외치고 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주장이 단지 그분의 주장이 아니라 충남교육을 담당하는 분들의 대다수 주장이라고 하네요. 이제 그 한복판에 서 있는 저로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느낌입니다.
김인규/ 안면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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