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은 화상을 그린 족자를 말하며, 권성 선생영정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25호로 지정되어 있다.
권성(權惺, 1653-1730)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복관은 안동이고 자는 경중(敬仲), 호는 제원재(霽月齋)이다. 1687년(숙종 13년) 알성문과에 장원급제한 뒤 지평, 장령, 집의, 헌납, 사간 등의 벼슬을 지냈다. 1703년 조광조, 이이의 유집에서 현군이 행해야 할 18개조를 뽑아 ‘국조명신주의집록(國朝名臣奏議輯錄)’을 편찬하여 숙종에게 바쳤다. 그 뒤 평안도, 황해도, 강원도, 함경도, 경상도, 충청도 관찰사를 역임하는 동안 선정을 베풀어 명관으로 이름이 났다. 1721년(경종 1년) 한성부판윤으로 있을 때 신임사화(辛壬士禍)가 일어나 삭직되었다가, 1725년(영조 1년) 노론(老論)이 집권하자 부총관을 거쳐 한성부판윤, 공조판서를 지냈다. 1727년(영조 3년) 정미환국(丁未換局)으로 다시 물러났다가 형조판서, 참찬 등에 여러 차례 기용되었으나 사퇴하고 전원생활로 여생을 보냈다.
[3] 봉서사소조삼존불상(鳳捿寺塑造三尊佛像)
불상이란 부처의 가르침을 기초로 한 불교교리에 의한 예배대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조각상이다. 인도에서 불교가 발생하고 석가모니의 열반 이후 약 500년 동안은 이러한 조각상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나, 1세기 경 쿠샨왕조시대부터 조각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조각상들은 불교의 전래와 함께 인도에서 남으로는 바다를 통해 실론(현재 스리랑카)과 동남아지역으로 퍼져갔으며, 북으로는 육로로 서역을 거쳐 중국으로 가면서 발전하였다. 중국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1세기경의 후한시대로 생각되지만 5호16국 시대에 이르러 북방 호족들의 적극적인 불교 수용으로 인하여 불상제작도 활발해졌다. 우리나라에는 불교가 삼국시대에 처음 전래되었고 이에 따라 형성된 불상은 중국의 영향 속에 발전한다.
봉서사 소조삼존불상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34호로 한산면 호암리 195번지 봉서사 극락전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불상은 조선 광해군 10년(1618년) 극락전에 본전불인 아미타불과 좌측에 관세음보살, 우측에 대세지보살을 봉안했다. 이 불상들은 모두 흙(점토)으로 만든 것(소조불)에 금도금을 하였다.
봉서사는 고려말 기산면 영모리에 영모암이 있었던 것을 1682년(숙종 8년) 4월에 이곳으로 옮겨지었다고 한다. 영모암은 건지산 북쪽에 있는데 이색의 화상이 있다고 하여 이색선생과 연유하여 건립된 암자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극락전 현판 글씨가 석북 신광수(조선 영조 때의 학자·문인, 1713-1775)의 유필이라고 되어 있어 석북공이 머무른 사찰로 짐작된다.
또한 봉서사는 월남 이상재 선생이 소년시절 학문을 한 아늑하고 조용한 사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