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구마다 고깃배들로 북적거리던 금강에서 배를 빌려 타기란 쉽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화양면 옥포에서 1톤도 채 안되는 선외기 1척을 빌릴
수 있었다.
배를 부리는 최종영(68)씨는 20년 넘게 금강 하류를 누비며 고기잡이만 해 온 분으로 하구둑이 막히기 전까지만 해도
우어, 황복, 참게, 장어 등을 잡아 올려 하루 1~20만원 정도 수익을 올렸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통발을 이용해 붕어나
빠가사리(동자개과의 민물고기) 2~3kg 정도 잡아 올려 수입이라 할 것도 없다고 한다. 현재 화양면에 내수면어업 면허를 가진 사람이
3명뿐이라고 했다.
이 같은 현상은 배수갑문 밖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갑문이 없는 장항 쪽에서 유속이 정지되어 뻘이 차오르고 있는 것이다. 배수갑문 중간 바로 앞에서 잰 수심은 590cm였다.
물산이 풍부한 금강 하류 지역은 침략자들에게는 아주 좋은 약탈 대상이었다. 고려말 우왕 6년(서기1380)에 왜구가 500여척이나 되는
대선단을 이끌고 금강을 거슬러 올라왔다. 진포에 상륙하여 민가를 휩쓸고 다녔다.
고려 조정에서는 최무선을 보내 왜구를 무찌르게
했다. 최무선이 이끄는 100여척의 고려 수군은 배에 화포를 싣고 해전을 벌였다. 세계 역사상 최초의 함포해전이었다. 함포의 활약으로 고려
수군은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
이를 진포대첩이라 부르는데 용왕사는 이 때 수장된 병사들의 넋을 위로하고 해마다 풍어제를 지내던
곳이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용왕사 터에 최근 사당 1채를 지어 역사의 맥을 잇고 있다.
용왕사 뒤로 함라산에 이르는 산록은
입점리 고분군을 비롯해 고대 문화유산이 땅속에서 숨쉬고 있는 지역이다. 백제 문화유산의 보고인 이 지역이 제대로 조사되지도 못하고 포클레인의
삽날에 유린되고 말았다. 금강호를 지척에 둔 이 일대 76만평을 파헤쳐 민둥산을 만들어 37홀 규모의 웅포골프장이 들어선 것이다. 반경 3km
이내에 있는 모든 가옥들이 벽에 금이 가는 피해를 입었다. 여기에 뿌려질 농약은 곧바로 금강호에 유입될 것이다.
고소득 올려주던 실뱀장어
웅포대교를 향해 거슬러 오르다 장어잡이 어선 한 척을 만났다. 3일에 한번 배수갑문을 여는데 이 때 뱀장어가 수문을 통해 더러 금강호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이다. 뱀장어는 강과 바다를 오르내리며 어민들에게 고소득을 올려주는 어족이다.
해마다 봄이 되면
새끼뱀장어(실뱀장어)가 바다에서 거슬러 오고, 가을에는 강에서 성장한 뱀장어가 번식을 위해 먼 바다로 돌아간다.
뱀장어 알과
새끼는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아 오랫동안 뱀장어의 번식은 수수께끼였다. 이 수수께끼는 20세기 초에서야 비로소 풀리게 되었다. 1922년
덴마크의 어류학자 요하네스 슈미트박사는 이동하는 뱀장어를 따라가 서인도제도의 북동쪽에 있는 사르가소 해역에서 부화 직후의 개체를 발견하여 비로소
뱀장어의 번식장소를 알아냈던 것이다. 번식을 위해 무려 5,000km나 이동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뱀장어도 같은 방법에 의해
타이완이나 오끼나와 동쪽 해안이 번식 장소로 여겨지고 있다. 알에서 깬 나뭇잎 모양의 새끼는 프랑크톤으로 살아가다 2∼3년 걸려서 강어귀로
회귀한다.
이때는 이미 8∼10cm 정도 자란 실뱀장어로 변해 있고, 몸은 희고 투명하며 두 눈만 까맣다. 뱀장어의 번식이 이렇듯
신비의 베일에 가려있기 때문에 양식이 어려워 이 시기의 실뱀장어를 양식장에서 가두어 기른다. 이 때문에 양식용 실뱀장어의 가격은 그야말로
금값이다.
하룻밤 사이에 수백만원을 벌기도 했다고 한다. 하구둑이 막히기 전에 금강하류지역에서도‘ 시라시’라 부르는 실뱀장어를
잡아 짭짤한 소득을 올렸는데 1kg에 200~300만원을 받았으며 1kg은 7~8천 마리 정도라고 한다.
모든 지천에 배수펌프장
▲ 금강하류 양안의 모든 지천에
배수펌프장이 있다.
하구둑에서 상류로 올라가며 강 양안은 바로 산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제방을 쌓았다. 자연하천이 아닌 인공하천으로 바뀐
것이다. 이곳으로 흘러드는 크고 작은 모든 지천에 배수펌프장이 설치되어 있음을 확인하며 상류로 거슬러 올라갔다.
웅포대교 부근부터
강폭이 좁아졌다. 토사가 쌓여 형성된 하중도를 개간하여 농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좁은 강폭이 웅포대교 부근부터 갑자기 넓어진
것이다. 이로 인해 유속이 갑자기 느려져 토사퇴적이 가장 심한 곳이다.
이곳을 지나면 강 남쪽은 익산시 용안면의 저지대이다.
하포, 상포를 지나며 강경까지 제방으로 이어져 있는데 집중호우 시에 침수가 가장 크게 우려되는 곳이다.
강경까지 가기 어려워
부여군 임천면 칠산에 이르러 강 남쪽으로 하중도가 있는데 이를 개간하여 논농사를 짓고 있었다. 칠산 배수펌프장을 지나며 강폭은 다시
좁아졌다. 수심을 재어보니 5m가 넘었으며 유속이 빨라졌다. 그런데 갑자기 선외기 뒷부분 스크루에서 흙탕물이 솟구쳤다.
수심을
재어보니 1m 정도이다. 강바닥을 훑고 지나가는 좁은 부분은 수심이 깊고 나머지 부분은 얕은 것이다. 금강하류 곳곳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하는
최종영 씨도 더 이상 올라가기 어렵다며 난감해 했다. 강경까지 가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칠산에서 배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글/허정균, 사진/이강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