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편지
가을편지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6.10.27 00:00
  • 호수 3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양선숙 칼럼위원

보고 싶은 친구에게.

산야에 머물던 가을이 도심을 서서히 물들인다. 올 가을에는 비가 적게 와서 곡식과 작물이 제대로 영글지 못했다고 한다. 시장에 가서 돈만 주면 쉽게 살 수 있는 터라 말라가는 농작물을 바라보는 농부의 심정은 생각해볼 뿐 체휼(體恤)할 순 없구나.

가을 가뭄으로 예전같이 화려하진 않지만, 요즘 한반도의 가을은 아름답기만 하다. 너도 어딘가에서 이 아름다운 가을을 느끼고 있겠지?


며칠 전, 남편과 오랜만에 산행(山行)을 했다. 보령과 광천을 끌어안은 ‘오서산’의 가을 억새를 보고 왔어. 가파른 산등성이를 숨차게 오르며 폐부 속 깊은 곳에 쌓였던 찌꺼기를 내뱉고 오서산의 맑은 기운으로 채웠다.

소박하게 펼쳐진 억새의 하늘거림이 높은 곳을 정복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을 더해 주었지. 자동차로 이동해 쉽게 볼 수 있는 눈요깃거리가 되기 싫어, 찾는 이는 적지만 힘들게 자신을 만나러 온 이들을 잔잔한 미소로 반겨주는 듯 했다. 오랜만에 가져보는 남편과의 오붓한 가을 나들이었다.

내가 아는 분은 나뭇잎 떨어지는 스산함 때문에 가을이 싫다고 한다. 나는 화창한 봄을 좋아했는데 어느 때인가부터 사계(四季)의 좋고 싫음이 뚜렷하지 않다. 뜨거운 여름의 태양도, 한겨울의 추위도 즐길 줄 아는 걸 보면 벌써 나이를 먹고 있는 듯하다.

친구야! 여고시절, 가정(家庭)시간에 한복 만들기 실습 때 바느질을 제대로 못해서 네가 내 저고리 대신 만들어 주었던 일 기억나니? 본뜨는 것부터 옷고름 다는 것까지 어찌나 힘든지 실습 과제를 포기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던 내가 요즘 우리 딸의 인형을 손수 만들어 주고 있다.

둘째 아이 과제물 때문에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더라. 동물 모양의 본을 떠서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바느질을 하고 그 속에 솜을 넣어서 큰 아이는 곰돌이, 둘째아이는 생쥐, 셋째는 토끼를 만들어 주었단다.

솜씨 없는 엄마의 실력이지만 얼마나 좋아하는지 밤마다 가슴에 껴안고 자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뿌듯하다.

숨어있던 잠재의식의 바느질 솜씨가 발휘가 되는 것인지, 아니면 모성본능이 발동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예전의 선머슴 같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단다. 이런 내 모습 보고 싶지 않니?
친구야!

우리 몇 년 후에나 만날 수 있을까?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난 후 예전과 같은 편안함을 가질 순 있을까? 서로가 살아 온 삶의 형태가 달라서 한동안 서먹거릴지도 몰라. 그러나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 그 진실 때문에 우리는 쉽게 가까워질 거라 믿는다.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오늘을 보내고 있을지 모르는 그리운 내 친구야!
고이 넣어 둔 단풍잎 책갈피에 담긴 너와 나의 우정을 꺼내보며 너에게 소중한 모습 보여주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 너와 팔짱끼고 꾸밈없는 웃음 지으며 단풍 길을 걷고 싶은 깊어가는 가을밤이다.

2006년 10월 가을에 ……
너의 소중한 친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