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비싼 나무로
값비싼 나무로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6.11.10 00:00
  • 호수 3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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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림
칼 럼 위 원

지난 달 월포(月浦)의 한 농장을 찾아간 일이 있다. 조경용(造景用) 나무를 구경하기 위해서 였다.

농장주의 집을 찾으니 맨 먼저 나의 눈에 환하게 들어온 것은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빨간 감들이었다.

파란 하늘 가득히 뻗은 가지마다 빛나는 감들을 보고 우리일행은 탄성을 질렀다.

농장주는 감 따는 도구로 감을 손수 따주며 “우리 할아버지께서 손자들 따먹으라며 심어 주신 나무”라고 했다. 할아버지와 손자의 끈끈한 인연의 끈을 감이 이어 주고 있는 것이었다.

“나무를 심는 사람이 있어야 열매를 따먹는 사람이 있다”는 독일 격언을 실감케 했다.

반송(盤松), 주목, 사철, 목백일홍, 회화, 단풍, 감, 모과, 등(藤) 등등, 규모는 크지 않지만 빈 땅을 찾아 오밀조밀 심어 놓은 농장주의 부지런함과 성실성에 나는 우정을 느꼈다.

나도 젊었을 때 소규모나마 나무를 길러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야기가 통했다.

인재를 기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무를 기르는 데는 긴 호흡이 필요하다.

당년이면 꽃을 보고 수확할 수 있는 초화(草花)나 야채와 달리 나무는 여러 해를 길러야 성목이 되고 수명도 수십 수백 년 아니 수천 년에 이른다.

그렇듯 거대하고 오래 사는 나무도 시작은 떡잎부터다.

떡잎 때 보호해주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고 묘목일 때 정성을 기울여 다듬어 주지 않으면 나무 구실을 기대하기 어렵다.

사람에게 각각 역할이 있듯, 나무에게도 각각 제 구실이 있다. 베여서 각종목재로 쓰이기도 하고 유실수, 관상수, 조경수로 쓰이기도 한다.

어떤 경우이든 나무는 오래 살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수명을 다하고 편안히 죽기(考終命)를 원하는 것과 같다.

나무는 서서 죽기를 원한다. 백두대간에서 서서 죽은 나무들처럼 수명을 다하고 죽기를 원하는 것이다.

도 높은 스님이 좌탈(座脫) 입망(立亡)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수명을 다하기 전에 쓰러지는 것을 애석해 하듯 나무도 수명이 다하기 전에 베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임을 당해도 말을 못한다.

그런 나무의 아픈 심정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나무가 되도록 유익하게 쓰이도록 도모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이 적재적소에 쓰일 수 있게 하듯.

“나무는 덕을 지녔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할 줄 안다. 나무로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하고 왜 여기 놓이고 저기 놓이지 않았는가를 말하지 아니한다.”

일찌기 이양하(李敭河)선생은 수필 <나무>에서 이렇게 썼다.

나무는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우리 인간은 나무의 운명을 결정 지을수도 있지 않을까? 그 용도에 따라 값지게 쓰인다면 나무도 고마워 할 것 이다.

그러지 않고 값비싼 나무로 숯 구어 팔듯 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의좋게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을 무자비하게 베어 버린다면 나무라고 원한이 없겠는가.

마침 지난 주말이 육림(育林)의 날. 나는 월포 농장에 답답하게 자라고 있는 약간의 나무를 사들여 공원 조성에 기증하기로 했다.

조금이나마 나무의 덕에 보답하는 일이 아닌가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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