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뿔든 사회
고뿔든 사회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7.04.13 00:00
  • 호수 36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남에게 닥친 커다란 불행에는 둔하고 나의 작은 불편에는 민감하다는 말이다. 염병, 전염병(傳染病)의 준말로 흔히 장티푸스 일컫는 말이다. 고뿔은 감기(感氣)의 고어로 코에서 불이난다는 ‘코 불’에서 나온 말이라 한다. 아무리 고뿔이 만병의 근원이라 한들 염병의 위협과 고통에는 못 미친다.

나소열 군수가 대한적십자봉사회 결성식에서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생겼다”며 미워하는 마음이 없어지도록 사랑을 부탁했다고 한다. 때로 인간적으로 서운한 마음이 있고 힘들 때도 있을 것이다. 허나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함께 미워해 달라고 하는 듯한 이런 말은 군수가 공식석상에서 할 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군수에게 있어 ‘미운 짓’이란 어떤 것일까.
충신(忠信)이나 신의(信義)가 있는 사람은 임금에게, 벗에게 고언(苦言)을 아끼지 않는다. 당장 귀에 거슬린다 하여 쓴 소리를 외면하는 것은 피차 성군(聖君)도 충신도 아니며 좋은 벗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머리로는 헤아리되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반성해야할 것이다.

군수의 미움을 산 사람은 누구일까. 군수 퇴진을 외치는 장애인들일까. 군청 앞에 천막치고 농성하는 서부교통 노동자들일까. 군수 집을 항의 방문해 그의 노모를 놀라게 한 사람들일까. 주민소송으로 군수를 고발한 사람들일까. 아니면, 군수의 잘잘못을 사사건건 보도한 뉴스서천일 수도 있겠다. 평소 ‘군수가 나를 별반 좋아하지 않는다’고 느낀 사람이나 단체는 ‘나를 두고 하는 말’이라 생각할 것이다.

생각에 머물렀던 것을 입으로 시인하는 일은 상황을 고착시키는 위력을 발휘한다. 군수는 평범한 일개 주민이 아니므로 이런 언사는 군민들의 분열을 유발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결론 적으로 전후사정이 어떻든 군수의 이와 같은 발언은 노무현 대통령의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말보다 더욱 충격적이다.

애초 군수(郡守)는 주민을 미워할 자격이 없다. 본인이 잘 해보겠다고 해서 주민들이 세워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무자리에서나 동정심을 유발하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직도 5개월이나 지난 단식을 들먹이는 등 전후사정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의 너스레 섞인 엄살은 전략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더욱이 3월 9일 관제데모로 고령의 주민들을 차디찬 서울 한복판에서 떨게 했다. 이날 군청에 남아 있던 부군수와 몇몇 공무원들이 반주를 즐기고, 근무태만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도됐다. 이에 대한 군의 태도를 놓고 어느 경찰관은 “경찰 같았으면 최소한 징계는 당했을 텐데…”라는 말은 의미 있는 것이다.

군수의 실정과 공직사회의 불성실 때문에 생계를 위협받고 때로는 절망하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그런데, 눈에 좀 거슬리고 귀에 좀 거슬린다고 주민을 미워한데서야 말이 되는가. 이는 주민들이 당하는 고통을 아무렇지도 않고 자기들이 당하는 불편은 용납하지 않는 행위인 것이다.

군수에게 고언 한다. 군수는 선출직이라 할지라도 정치가가 아닌 행정가이어야 하므로 섣부른 ‘정치 쇼’는 중단해야한다. 더불어 군수의 고뿔도 불편하겠지만, 주민들의 염병을 외면해선 안 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