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인의 사명
지성인의 사명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7.05.11 00:00
  • 호수 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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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知識)을 척도로 세상을 보자면 여러 부류의 사람이 있다. 모르면서 아는 채 나대는 이, 가만있어 중간이라도 가자고 침묵 하는 이, 무식이 자랑인 양 떠벌리는 이, 알면서 모르는 채 침묵하는 이, 아는 만큼 행하는 이 등이다.

지식, 사물에 대해 객관적으로 확증된 것을 단순히 아는 것을 말한다. 지성(知性)과는 다르다. 지성은 사물을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의지로 판단하는 능력까지를 말하며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을 지성인(知性人)이라 한다.

요즘 침묵하는 지성인들이 도마에 올랐다. 대선주자로 거론돼 오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여기저기 강연을 다니면서 이야기한 ‘동굴의 비유’가 언론에 조명된 까닭이 있다.

‘동굴의 비유’는 플라톤의 대화편 중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형제들의 담론을 기록한 총 10권으로 된 「국가(폴리테이아)」의 제7권에 등장하는 말이다. 실로 기원전 390년, 약 2400년 전 그리스 아테네 철학자들의 담론이 우리사회에서 재현되고 있다 하겠다.

당시 민중선동가들에 의해 좌우되는 정치를 비판하며 그 원인과 증상, 대안을 토론하는 내용이다. 오늘날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 값싼 사탕발림으로 민중을 선동하고 민중은 이런 사물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구조와 다를 게 없었던 모양이다.

‘동굴의 비유’는 현실세계를 빛이 들어오지 않는 동굴로, 사람들을 동굴 속에서 출입구를 등지고 쇠사슬에 묶여 있어 벽에 비친 사물의 그림자만 보며 생활하는 죄수로 비유한 것이다. 그 죄수가 동굴을 벗어나 새로운 빛을 보게 되고(지식) 그동안 그림자들은 허상이었으며 그 그림자들의 실체는 따로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지성)는 것이다.

이 비유를 통해 ‘참다운 지성이란 빛을 찾아내며 동시에 그 빛을 통해 어둠을 밝히는 사람’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나아가 지성인은 빛을 발견하고 자신만 동굴을 나서거나, 다시 동굴로 들어가 동굴 안 사람들에게 밝은 세상을 알리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는 만큼 사회구성원과의 공유여부를 분별하는 말이다.

서천의 지성인들은 누구인가. 가장 대표적인 지성인 집단은 행정이나 교육 공무원 집단이고 그 다음은 종교인 집단이 될 것이다. 국가적으로도 그렇지만 서천사회에서 이들이 침묵하고 있는 것이 질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더욱 심한 것은 동굴 안에 갇혀 있는 듯, 깨닫지 못하는 민중들을 선동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고 있는 일이다. 지성인이라면 허상과 실체를 구별할 능력이 있어야 하고 허상으로 민중을 선동하는 자들을 향한 정의의 외침이 있어야 한다.

지성인이라면 서천에 폐자동차 잔재물 소각장이나 폐기물 매립장이 들어서는 것, 대중교통의 파행운행이 힘없는 노약자들에게 고통이라는 것도 알 것이다. 장항산단 정책을 놓고 나소열 군수가 이성적이지 못한 판단으로 얼마나 많은 군민들이 고통 받았는지도 알 것이다. 진정한 지성인이라면 그릇된 것을 바로잡도록 노력하며, 권력에 휘둘리는 주민들의 호소에 귀 기울이고 고통분담을 위해 함께 나서야 한다. 

우리사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 사회에 환원하거나 재분배하지 않고 혼자서만 먹고 사는 부자들을 부도덕(不道德)하다며 질타하곤 한다. 지성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성인이 사회의 이치를 혼자만 알고 공유하지 않는 것, 이 또한 부도덕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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